[이영성 칼럼] 선거는 오만한 자가 진다

입력
2019.06.23 18:00
수정
2019.06.24 10:47
30면

오만했던 친박 공천, 참패로 귀결

내년 총선 덜 못하는 정당이 승리

자파 확대보단 널리 인재 구해야

2016년 치러진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자 당시 김무성(가운데) 대표가 총선 다음날인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당 대표직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은 국민 시선은 아랑곳없이 친박 진박, 비박 싸움으로 날을 새는 오만을 부리다 결국 부메랑을 맞았다. 연합뉴스
2016년 치러진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자 당시 김무성(가운데) 대표가 총선 다음날인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당 대표직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은 국민 시선은 아랑곳없이 친박 진박, 비박 싸움으로 날을 새는 오만을 부리다 결국 부메랑을 맞았다. 연합뉴스

지금은 동네북이 돼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한 때는 상징이었다.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있다고 해서, 그의 과거가 송두리째 정치 무능으로 등식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그는 우아한 이미지, 절제된 메시지, 승부처에서 이기는 선거의 여왕이었다.

노무현 탄핵의 역풍, 엄청난 정치자금이 실린 트럭째로 받은 차떼기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20~30석을 건지면 다행이라는 절멸의 위기에서 121석을 확보한 이가 박근혜였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피습을 당한 뒤 병상에서 당직자들에게 물어본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판세를 뒤집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국민통합을 내세워 문재인 후보의 어젠다를 일거에 앗아가 승리했다.

그런 그가 집권하고 있던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집권 새누리당은 패배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개념조차 모호한 창조경제가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게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총선 몇 달 전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은 물론, 개헌선인 3분의 2 이상을 석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대세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패배를 가져왔을까? 그건 오만이었다. 공천 기준이 능력이나 청렴 등이 아니라 진박(眞朴) 친박(親朴)이냐, 아니냐는 충성도였으니, 국민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봤다. 무조건 보수에 표를 던지는 골수파가 아니고 자존심 있는 사람이라면 드러내 놓고 새누리당을 지지하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결과는 민주당이 지역구 110석, 비례 13석 등 123석으로 지역구 105석, 비례 17석으로 122석에 그친 새누리당을 근소하게 앞섰지만, 개헌선 확보까지 장담하던 새누리당은 참사를 맞은 셈이었다.

선거는 묘하게도 결과가 나오면 그 이전의 숱한 논쟁이 일거에 정리되곤 한다. 20대 총선도 그랬다. 결론은 “박근혜가 잘못했다”였다.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지만, 만약 새누리당이 두루 인물을 발탁해서 여론조사처럼 승리했다면,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났을까? 공익 제보가 나오기 힘들어 최순실 사태는 지라시에서 언급되다가 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년 4월 총선 이후도 그럴 것이다.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1985년 2‧12 총선, 10‧26 박정희 시해사건을 촉발시킨 1978년 2‧12 총선처럼 시대성, 역사성은 없지만, 선거 결과의 여파는 크고 깊을 것이다. 박근혜 탄핵이 묵시적으로 지켜오던 선을 넘은 것이기에 만약 여당이 패배할 경우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혼돈을 겪을 수 있다. 반대로 야당이 진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지리멸렬할 것이다.

선거에 내재된 정서는 기본적으로 희망이다. 정당이든 후보든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힌다. 여러 번 떨어진 사람조차 “이번만은 이길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민주당도, 자유한국당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염치는 있는 터라 자신들이 잘했다기보다는 워낙 상대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겸연쩍음처럼 여야 두 정당 모두 국민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회 장기 공백 사태에서 보듯, 두 정당에 대한 국민 감정은 넌더리난다는 것이다. 장외투쟁만 고수하는 자유한국당이 더 비난을 받지만, 포용력이 부족한 민주당 역시 오만하게 보이긴 마찬가지다.

때문에 내년 총선의 승패는 결국 오만하지 않고, 덜 잘못하고, 겸손한 정당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다. 겸손함은 유권자를 만날 때 고개를 더 숙이라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정치에 대한 반성을 보여야 하고, 그 구체적 표현은 대대적인 물갈이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친박 논쟁처럼 우리 편을 더 공천하려는 정파적 계산을 드러내는 순간, 패배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패배는 의석 몇 개 없어지는데 그치지 않고 훨씬 크고 무거운 후과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부터 널리 인물들을 물색해 공천 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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