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쌍궤병행 여전히 부정적인데... 中 역할론 이번엔 통할까

입력
2019.06.21 16:22
수정
2019.06.21 21:2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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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北 비핵화 美와 대화로 풀고

그 과정서 적극 개입하겠다 표명

‘시진핑 역할론’에 김정은도 호응

남·북·미 3자구도 가능성은 차단

다자구도는 과거에 실패한 방식

北 안보 우려 해소로 양보 얻고

美의 긍정적 반응 유도가 관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또다시 ‘중국 역할론’이다. 20일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의 결론을 요약하면 한반도 문제를 미국과 대화로 풀고, 그 과정에 중국이 적극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이후 북미간 담판에 올인 하던 비핵화 방식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중국의 불만도 담겼다. 심지어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북한이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데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라며 미국을 향해 노골적으로 견제구를 날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면서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진전을 이루겠다”고 시 주석이 내민 손을 꽉 잡았다.

이처럼 중국이 기사도를 발휘하듯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비핵화 교착국면에 물꼬를 트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과거 중국의 얌체 짓을 미국이 못마땅해 하는 데다, 중국이 주장하는 다자구도는 이미 실패한 방식인 탓이다.

북한이 북극성, 화성, 무수단 등 중ㆍ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며 위협수위를 높이던 2016년, 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을 사실상 무시하는 ‘전략적 인내’를 고수했다. 동시에 “북한 문제에 적극 나서달라”며 어떻게든 중국을 끌어들이려 애썼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발끈하며 맞섰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천방지축 날뛰는 북한에 대한 책임을 왜 중국에 떠넘기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2017년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압박과 관여’로 대북 정책을 바꾸면서 중국의 처지가 옹색해졌다. 지난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벼랑 끝 전술로 맞서는 김 위원장을 상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중재자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갈등을 봉합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배후설’을 주장하며 거칠게 몰아세웠다.

졸지에 훼방꾼으로 내몰린 중국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당시 “미국은 북한이 거칠게 나오면 중국을 비난하고, 북한이 중국과 부드럽게 의사소통을 하면 중국이 한발 뒤로 빠져주길 바란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단역 배우가 아니다”고 반발했다. 이후 중국은 주연 배우가 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양자 담판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치여 무대 밖으로 밀렸다.

올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지 못하자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링 위에 오르려 분위기를 띄웠다. 과거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을 맡아 2005년 9ㆍ19공동성명을 견인했다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예상외로 격화되면서 중국의 주장은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묻혔다.

따라서 시 주석의 20일 방북으로 중국은 말로만 내뱉던 ‘역할론’에 생명을 불어넣을 기회를 잡았다. 또 김 위원장이 적극 호응하면서, 일단 중국을 쏙 빼고 남ㆍ북ㆍ미 3자구도로 비핵화 논의가 전개될 가능성은 차단했다.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21일 인민일보에 “미국은 양자 메커니즘을 선호하지만, 북한과 협상을 타결하면 비핵화의 실행을 보장할 제3자가 여전히 필요하다”며 중국의 역할을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국빈 방문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중국과 북한 양국은 전략적 소통과 경제 교류 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시 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전략적 소통의 강화와 실무 영역 협력 심화 등 양국 관계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부분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국의 참여방식이다. 4자회담으로 규모를 키워 선수를 더 늘리는 건 미국이 응할 리 없다. ‘합의→보상→파기→도발’의 패턴을 반복하다 실패해 2008년 12월 이후 11년째 중단된 6자회담의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해서다.

그럼에도 중국의 비핵화 구상은 여전히 살아있다. 쌍중단(북한 핵ㆍ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은 이미 넘어섰고, 쌍궤병행(비핵화ㆍ평화체제 동시 추진)만 남았다. 둘 다 중국이 일관되게 제시해온 해법이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만나 강조한 “정치적ㆍ평화적 해결”도 쌍궤병행(雙軌竝行)을 지칭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동시 행동이 아니라 북한이 먼저 비핵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미 지렛대로 북한을 활용하려는 중국이 성공하려면 얼마만큼 김 위원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래야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내 미국의 긍정적 반응을 유도할 수 있어서다. 정지융(鄭繼永) 푸단대 북한ㆍ한국연구소장은 “중국은 북한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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