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의 차이

입력
2019.06.22 04:4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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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를 연구하는 과학자와 공학자는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과학자는 새로운 현상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원리를 발견하려 애쓴다. 이에 비해 공학자는 새롭게 얻은 지식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일에 주로 몰두한다. 자연에 없던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합성 생물학자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톰 나이트 교수는 이 차이를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한 적이 있다.

과학자는 실험을 한 후 예상보다 생명현상이 두 배나 복잡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감탄한다. 그리고는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공학자 역시 동일한 실험을 하고 동일한 결과를 얻지만 투덜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젠장, 뭐가 이리 복잡해. 이걸 어떻게 해야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

물론 연구 현장에서 과학과 공학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가령 대학교에서 자연대에 소속된 연구자가 생명공학의 기법을 활용하는 일이 흔하고, 공대 연구자는 기본적인 생물학 지식을 늘 습득해야 한다. 문제는 원리가 충분히 규명되기 전에 응용을 너무 서두르고 있는 현실이다.

생명체에 대해 파고들면 들수록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생명현상은 복잡하다. 단적으로 2000년대 초반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초안이 완성됐을 때 사람 유전자의 수가 단백질처럼 10만여개가 아니라 3만여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전자 하나가 단백질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단백질을 만드는데 관여하기도 하고, 하나의 단백질을 만드는데 여러 유전자가 동시에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당연히 생명체에서 특정 유전자 하나를 제거하는 경우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더욱이 공학 기법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유전자만큼은 손을 대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번 부작용이 생기면 돌이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한 연구자가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쌍둥이 아기를 태어나게 했다고 밝혔을 때 세계인이 충격에 빠졌다. 물론 취지는 좋았다. 난치병으로 평생 고생할 가능성을 아예 없앤다는 것이었다. 기법도 뛰어났다. 유전체 편집 기술 또는 유전자 가위기술이라 불리는 첨단의 정밀 기법이 동원됐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 안으로 침투하는 통로(단백질)를 만드는 유전자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아기의 몸에 원천적인 방어 시스템이 갖춰진 셈이다.

하지만 이 아기의 수명이 오히려 단축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후 발표됐다. 에이즈에는 걸리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다른 질병들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유전자 가위 기술의 개발자를 포함한 18명의 연구자가 향후 5년간 인간 수정란에 대한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밀함의 상징으로 등장한 ‘가위’라는 표현은 ‘가위질’이라고 바뀌면서 그 가치가 폄하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연 연구의 시도가 중단되거나 그 속도가 늦춰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이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의 한 과학자가 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에이즈 발병을 막겠다고 공개적으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애초에 미생물의 자기방어 원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도출됐다. 동일한 바이러스가 몸에 다시 침투했을 때 예전의 감염 기억을 되살려 천적을 정확히 찾아가 없애는 방식이다. 미생물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절묘한 면역 체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현실에서 기술의 개발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하지만 정작 미생물의 자기방어 원리에 대한 기초 연구는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현상을 깔끔하게 단순화하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응용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분위기는 사회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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