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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印尼 ‘반공 대학살’
생존·유족 여성들 합창단 만들어
진실 전달·치유의 노래 불러와
올해 광주인권상 특별상 수상
기념 공연서 “5·18운동에 헌정”
디알리타 합창단이 19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공연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등 3곡을 불렀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낯선 듯 친숙한 선율이 가슴을 조이며 19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 강당을 메웠다. 인도네시아 한 여성 합창단의 올해 광주인권상 특별상 수상을 기념하는 초청 공연이었다. 합창단은 ‘임을 위한 행진곡(Marching for Our Beloved)’으로 자신들의 무대를 5ㆍ18광주민주화운동에 헌정했다. 수상에 대한 답례이자 비슷한 비극을 겪은 자들이 건네는 연대의 함성이다. 첫 곡으로는 자작곡 ‘희망의 인사(Salam Harapan)’를 건넸다.

디알리타(Dialita) 합창단은 1965~66년 ‘반공 대학살’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역사의 비극이 잉태했다. 단죄는커녕 진실마저 밝혀지지 않은 채 어느새 지천명을 훌쩍 넘은 생존 여성들과 희생자 유가족 여성들은 2011년 자신들의 처지를 이름에 녹인 합창단을 만들었다. 디알리타는 ‘50세 이상(Di Atas Lima Puluh Tahun)’이라는 인도네시아어의 약자다.

살아남은 자 10명(현재 22명)은 그때부터 서로 만나 역사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자, 오명과 차별에 시달린 자신들을 치유하고 다른 피해자를 돕고자 함께 노래했다. 학살 당시 가족을 잃고, 성희롱과 강간을 당하고, 불법 구금과 고문에 시달리고, 이후에는 ‘빨갱이’라 손가락질 당한 신산의 세월. 그러나 그들은 가사와 운율에 적의와 증오, 탄식 대신 화해와 치유, 희망을 담았다. 이날 공연 전 우치코와티 파우지아(67) 단장과 일리나 다야쉬(57) 총무, 11년간 구금됐던 회원 우타티(75)씨를 만났다.

일리나 다야쉬(왼쪽부터) 총무, 우치코와티 파우지아 단장, 단원 우타티씨 등 디알리타 합창단원들이 19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 초청 공연에 앞서 자신들의 앨범을 소개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창단 배경은.

“어렵게 살고 있는 유가족을 도울 자금을 모으기 위해 결성했다. 초기에는 인도네시아 아이들도 잘 아는 전통가요를 불렀다. 정치범으로 투옥됐던 피해자들이 만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국가기관, 대학, 문화센터, 러시아 호주 네덜란드 등 해외 공관에 초청됐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우정과 평화를 노래한다.”(우치코와티)

-노래는 어떻게 지었나.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밤 사흘만 조사한다고 따라갔다가 11년간 수용됐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청년단체에서 문예활동을 했을 뿐이다. 연필 한 자루 허락되지 않아 숯으로 비누나 차 포장지 등에 가사를 썼다. 운율은 기억 속에 녹음했다.”(우타티)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고른 이유는.

“민주화를 위해 싸운 광주 시민에 대한 연대의 의미다. 올해 시상 차 방문한 광주에서 처음 노래를 들었다. 5시18분마다 노래가 흘러나오더라. 가사는 모르지만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악보를 읽을 수 없어서 유튜브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연습했다. 한국의 희생자들은 그래도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갈 길이 멀다.”(일리나)

-과거사 규명은.

“인도네시아 백서에 따르면 당시 50만명이 학살됐다는 통계가 있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없다. 그 숫자만이라도 우선 인정해주기 바란다. 구금 고문 몰수 등의 피해는 여전히 포함돼 있지 않다. 노래를 통해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대변하겠다.”(우치코와티)

인도네시아 비극의 역사를 아름다운 선율에 담아 세상에 알리는 디알리타 합창단 단원들. 디알리타 합창단 제공

반공 대학살은 1965년 9월 수하르토가 주축이 된 군부가 공산당의 쿠데타를 진압하며 권력을 잡은 뒤 벌어졌다. 군부에 반대하면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군이 조직한 민병대와 민간 자경단이 동원됐다. ‘공산당 척결 운동’이란 미명 아래 1년도 지나지 않아 100만명 이상이 살해됐다. 죽창으로 항문을 찔러 죽이고, 강간한 뒤 죽이고, 칼로 머리를 베어내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이웃이던 노동조합원, 소작농, 지식인, 화교 등이 가족 앞에서 희생됐다. 150만명 넘게 투옥됐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20세기에 벌어진 가장 처참한 집단 학살’이라고 보고했으나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수하르토의 ‘신질서(Orde Baru)’ 정부를 전폭 지원했다. 1998년 민중혁명으로 수하르토가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아니 아직까지도 학살의 주체들은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반공 대학살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없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디알리타 합창단은 아름다운 노래로 몸서리 치는 침묵에 답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약하지만 위대한 무기다.

디알리타 합창단이 19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김창범 주 인도네시아 대사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를 향한 힘든 여정을 걸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라며 “민족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의 뒤에 디알리타 합창단처럼 강인한 여성의 기여와 역할이 있었다”고 치하했다.

당시의 비극이 더 궁금하다면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오브킬링(The Act of Killing, 원제 도살자)’과 ‘침묵의 시선(The Look of Silence, 원제 적막)’을 찾아 보기를 권한다. ‘눈물마저 역겹다’는 한 네티즌의 평이 와 닿는다.

디알리타 합창단이 19일 자카르타의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공연을 마치고 김창범(앞줄 왼쪽 다섯 번째) 대사 등 대사관 직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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