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그림자들

입력
2019.06.18 04:40
29면
김원봉.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원봉.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벌어지고 있는 김원봉 서훈 논란이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개편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두텁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식민지배 체제를 극복하고 통일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적 역량이 한계에 부딪치고, 동서 냉전이 격화되면서 체제선택이 강요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은 민족사적 그리고 국제법적 정통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정치적 결단으로 만들어 낸 제헌 헌법에 투영된 핵심적 가치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반영하고 있고, 또 국제연합의 감시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승인을 통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김원봉의 서훈을 논의하는 움직임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어두운 그림자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민족해방을 위한 그의 무장투쟁과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분명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체제선택의 엄중한 시기에 그는 대한민국을 떠나 사회주의체제를 바탕으로 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선택했다. 이후 그는 국가검열상으로 북한의 국가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족의 생명을 앗아간 6ㆍ25 전쟁에도 노동상으로 북한의 전쟁 노력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였고, 그 노력의 대가로 훈장까지 받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훗날 통일된 한국에서 통일한국이 새롭게 지향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포용적 평가를 통해 훈장을 받는다면 몰라도 대한민국을 파괴시켜야 하는 적으로 삼고 투쟁한 사람에게 서훈 운운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와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려는 의도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교육하고, 기억을 강화하는 박물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1상설 전시실에는 한국 현대사의 기점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개항기로부터 시작하여 대한제국, 일제강점, 3ㆍ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등 대한민국의 전사(前史)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 3개의 상설 전시실에는 국가건설,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의 역사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알려진 박물관 개편 시안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1919년을 기점으로 전시하고, 경제발전의 역사는 대폭 축소하는 대신 민주화와 투쟁의 역사를 대폭 확장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원을 1919년으로 잡아 상설 전시관을 개편한다는 것은 기존의 전시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고, 또 헌법에도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나마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개편이라고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정을 등한시하고,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이루어졌기에 경제발전의 노력은 폄하하고, 민주화 노력만 강조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균형 감각을 파괴하는 폭력행위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치적 결단으로 만들어 낸 헌법적 가치에 기초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역사 앞에서 겸허할 필요가 있다.

김왕식 미국 미주리대학 한국학프로그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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