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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7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소비재 수출 활성화 방안, 추경안 등에 대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60년대 이래 우리나라 정부는 경제성장을 최우선에 두었다. 경제성장만이 오랜 가난을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실제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임금 기조를 유지하고 사회보장 투자에 소홀하던 중 근로 계층의 불만은 축적되고, 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노동조합의 강화된 교섭력을 토대 삼아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하고 소득 불평등은 완화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리는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을 감수하며 경제 회생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한국 경제는 성공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재작년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소득 격차의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 전체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항상 지켜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모든 국민의 희생에 빚진 경제성장의 과실은 대기업과 불로소득 계층 외의 사람들에게는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이 점에서 현 정부가 내건 소득주도 성장은 2000년대 한국이 추진한 경제정책의 과오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경제성장의 목적이 국민 소득의 공정한 향상이란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노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낮은 소득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줄지 않는다면, 그 경제성장은 헌법적ㆍ윤리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이는 정권의 보수ㆍ진보 여부를 따져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군사정부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국민을 구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1962년 헌법 제111조 제2항은 “국가는(…)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라고 규정했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그 논의의 중심에는 여전히 최저임금의 인상 문제가 놓여 있다. 2017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한 찬반 의견은 분분하지만, 그 결정을 한 위원회의 공익위원 대부분이 과거 정부가 임명한 인사란 점을 고려한다면, 당시 위원들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시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최저임금의 ‘적정한 인상률’이란 쟁점에 관한 과도한 논쟁은,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및 고용상 어려움의 주요 원인이 산업정책의 부재에 있다는, 더 큰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고 소홀한 정책 대응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말 우리나라 경제와 고용이 어려웠던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한국 경제의 뼈대인 재벌이 무너지는 등 모든 산업 기반이 붕괴되었다. 그렇듯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위기에서 김대중 정부는 오히려 새로운 산업정책을 추진했다. 모든 국가적 자원을 정보 인프라의 구축, R&D 투자 유도, 정보산업 인력의 양성에 투자하고,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데 힘썼다. 정부는 이를 실업 대란을 타개할 주요한 정책 수단으로 인식했다. 이렇게 성장한 정보통신 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다. 2001년 벤처기업은 1만 개를 넘었고 1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장지호, ‘김대중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정책에 대한 고찰’, 한국행정학보 제39권 제3호).

그런데 그 시절 모든 정부 부처가 새로운 산업 기반을 마련하고자 애썼던 기억과 최저임금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현재의 광경을 비교하다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용과 산업 정책, 일자리와 혁신은 연결되어 있고 재정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지금은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새로운 산업정책을 마련하고, 거기에 모든 자원과 정책적 역량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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