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카톡방담] “DJ에 가린 여성운동가, 이희호 개인 업적 다시 보게 됐다”

입력
2019.06.15 1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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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가 궁금해?] 이희호 여사 별세와 조문정국 

14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희호 여사의 안장식에서 국군 의장대가 고인을 영정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희호 여사의 안장식에서 국군 의장대가 고인을 영정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10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정치권에 조문정국이 이어졌다. 고인은 김 전 대통령이 1972년부터 87년까지 가택연금과 해외망명 등 박정희ㆍ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내기까지 함께 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이 여사는 단순한 전직 대통령 부인이 아니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남녀차별 철폐와 가족법 개정운동을 주도하며 우리사회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한 거목이었다. 여야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고인의 유지 계승을 다짐했지만 여전히 국회의 문은 잠겨있다. 북한은 조문단을 보내지 않고 조의문과 조화만 전달했다. 본보 국회팀과 외교안보팀이 정치권 움직임을 놓고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이희호 여사를 추모하는 정치권 분위기가 어땠나요. 민주평화당이 사실상 상주역할을 해서 주목을 받았는데요.

정론관 마이크(마이크)=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가 민주평화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소를 내내 지켰던 원로 정치인인 권노갑ㆍ정대철 전 의원이 모두 평화당의 상임고문입니다. 상주를 자처한 박지원ㆍ최경환 평화당 의원은 각각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리는 정치인들입니다. 평화당은 이희호 여사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에 초비상 상태를 유지했고, 별세했던 지난 10일엔 아침부터 비상대기에 들어가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했습니다.

불나방=역대 대통령 부인들과 비교해서 이희호 여사에 대해 젊은 기자들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나요.

올해는 뚜벅이(뚜벅이)=이희호 여사가 97세나 되다 보니 기자들도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정확히 아는 기자가 많지 않았어요. 퍼스트레이디로 단독 해외순방을 처음으로 했고, 2002년에 유엔 아동특별총회에서 기조연설까지 했죠. 열정적인 여성운동가라는 점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기자들이 많아 이 여사의 별세소식이 그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빨간 양말=이희호 여사가 ‘퍼스트레이디’라는 점 때문에 그 동안 이 여사 개인보다는 대통령의 부인으로만 주로 부각이 됐습니다. 이 여사가 남편인 김 전 대통령에 혹시라도 누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조용히 활동한 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과 분리해 이 여사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보면 역대 대통령 부인처럼 내조하는 퍼스트레이디라기 보다는 한국 현대사에 큰 업적을 남긴 어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서전을 읽어 보면 이 여사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카톡방담 빈소 찾은 주요 인사 발언. 그래픽=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카톡방담 빈소 찾은 주요 인사 발언. 그래픽=김경진기자

불나방=김대중ㆍ이희호 두 사람을 처음 소개시켜 준 인물은 김정례 전 보건사회부 장관이죠. 김 전 장관을 본보가 인터뷰했는데 기사에 담지 못한 얘기들이 더 있나요.

파랑은 동색=김정례 전 장관은 1927년생으로 이 여사보다 다섯 살 아래입니다. 고령으로 외부활동이 어려운 상황이었죠. 인터뷰 섭외를 위해 대한민국헌정회에 문의했을 때도 ‘일단 연락은 취해 보겠지만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다만 종로구 자택으로 전화를 했을 때 김 전 장관은 마침 TV로 고인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이 여사를 회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고인에 대한 추억과 소회를 말하면 좋겠다는 김 전 장관의 뜻에 따라 한국일보와 인터뷰가 이뤄지게 된 것이죠.

마이크=김 전 장관 입장에선 이희호 여사와의 추억이 50~60년 전 일이라 소소한 에피소드를 기억해 내기 쉽지 않았죠. 인터뷰 진행 당시 김 전 장관의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김 전 장관이 가족들에게 이 여사와의 추억을 자주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만큼 김 전 장관과 이 여사는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많은 추억을 나눴습니다. 김 전 장관과 이 여사가 과거 찍었던 사진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등 자주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불나방=북한에서 조문단을 보내올 것으로 예상됐는데 빗나간 것은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마음은 콩밭에=이희호 여사가 과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갔으니 당연히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조문단을 꾸려 내보낼 것이란 관측이 많았어요. 도리나 이치 같은 걸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그런데 명분을 따지자니 북한이 처해있는 상황이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데 조문단을 꾸려 남한과 접촉하는 건 메시지 관리 측면에서 ‘아니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조의문ㆍ조화 전달자로 정하면서 이 여사에 대한 예를 표하긴 했지만, 전달 장소를 ‘북측 지역’으로 한정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과하게 해석되는 걸 막으려고 한 것 같아요.

뚜벅이=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은 건 남북 및 북미협상에 대해 고민이 많다는 걸 방증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도 남북정상이 대화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테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이나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전달할지 꼼꼼히 전략을 짜고 있는 상황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 쪽으로 조문단을 보내면, 조문과 관계없는 현안과 관련한 민감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어 조의만 보내기로 한 것 같습니다. 태영호씨 말대로 대남 라인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 중인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불나방=민주화 투쟁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압한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조화를 보냈죠. 이순자씨와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등 예상치 못한 인물이 조문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상적인 조문객과 이들이 남긴 말은 무엇이 있었나요.

마이크=이순자씨를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조문을 했죠. 이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지만, 김씨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업적을 언급하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연세대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강연이 끝나자마자 빈소를 찾았습니다. 하토야마 전 총리 외에도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페데리코 파일라 이탈리아 대사, 미하엘 라이터러 EU 대사 등 각국 외교 대표들도 빈소를 찾았습니다. 이날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 지가 최대 관심사였는데,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지 않을 것이란 뉴스가 나왔을 때인 오후 5시쯤 천해성 전 통일부 차관이 빈소를 찾았는데요. 이 여사의 삼남이자 상주인 김홍걸씨가 천 전 차관에게 "북한에서 조문단이 와 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는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여의도 꽃등심=하토야마 전 총리는 한국내에선 존경받지만 일본 현지에선 좀 다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익과 동떨어진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해 ‘우주인’이란 별명으로 불리지요. 일본 정치사에 비(非) 자민당 정권으로 3년반 잠시 등장했던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킨 총리지요.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 입장을 가진 양심적인 분입니다. 조문 온 이유는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 때문이겠죠. 일본내에서 많은 팬들을 보유한 흔치않은 한국의 대통령입니다. 또 박정희 유신정권 때 일본 내 많은 진보지식인층이 ‘민주인사 김대중’을 지키고 지지했다는 묘한 애착같은 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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