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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접하는 점자 정보를 바탕으로 편의점 냉장고에 진열된 다양한 캔음료를 재배열했다. 캔에 새겨진 점자로만 정보를 얻는 시각장애인들은 20여 종의 캔음료를 단 세 종류로만 구분할 수 있다.
비장애인의 시각으로 본 캔음료.
캔음료에 새겨진 점자.
컵라면, 과자 등 대부분의 제품엔 점자 표시가 없다. 시각장애인들은 진열된 제품(왼쪽)을 손으로 만져보거나 흔드는 방법으로 상품의 종류를 유추할 뿐 정확한 정보는 제공받지 못한다. 오른쪽은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만든 가상의 이미지.
의약품이나 유제품의 경우 유통기한 정보가 중요하지만 점자 표시는 없다. 시중에서 판매 중인 두통약(왼쪽)과 시각장애인이 접하는 가상의 이미지.

시각장애인은 점자로 세상을 읽는다. 청각이나 후각으로 얻을 수 없는 세밀한 정보를 손끝에 닿은 작은 돌기의 배열은 담고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 위주로 굴러가는 사회는 점자 표시에 인색하다. 공공장소에서조차 점자 안내를 찾기 어렵고, 있으나마나 한 경우도 많다. 때문에 시각장애인은 익숙한 일상에서조차 종종 미궁에 빠진다.

점자를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이미지로 만들어 동일한 공간에서 비장애인이 얻는 시각 정보와 비교해 봤다. 한눈에 보기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정보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고, 또한 부정확했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함께 장애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 시행이 20일도 남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장애인에 맞춰져 있지 않다.

◇아예 없거나 정작 필요한 정보는 누락

7일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대학생 조은산(22)씨와 함께 서울시내 한 편의점을 찾았다. 냉장고 문을 열자 20여 종의 다양한 캔음료가 눈에 들어왔다. 조씨의 손끝은 이를 단 세 가지 종류로만 구분했다. ‘음료’ ‘탄산’ 그리고 ‘모름(점자 없음)’. 그나마 2017년 롯데칠성이 ‘탄산’을 추가한 덕분에 정보가 늘긴 했지만 별다른 도움은 안 된다. 조씨는 “제품명이 없으니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 비슷비슷한 것들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게 점자의 역할 아닌가”라고 말했다.

식료품 등의 점자 안내 표시가 법규상 의무가 아니다 보니 컵라면이나 과자 등 대부분의 제품에 점자 표시가 없다. 조씨는 “직원 도움 없이 우리끼리 아무 컵라면이나 골라 먹어 보는 ‘복불복’ 놀이를 가끔 하는데 웃기면서도 좀 서글프다”고도 했다. 유통기한이 중요한 약이나 유제품 역시 점자 표시가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비장애인의 도움은 필수다.

서울 마포구 공덕역 1번 출구 안내판(왼쪽)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정보를 시각화한 이미지(오른쪽).
공덕역 1번 출구에 부착된 점자 표지에는 출구 번호와 호선 일부가 누락돼 있다.
공덕역사 내부에 설치된 ‘나가는 곳’ 안내판에 주변 공원과 관공서 등이 표시돼 있다(왼쪽). 오른쪽은 ‘의료보험관리공단’이라고만 표시된 점자를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이미지다. 의료보험관리공단은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바뀌었고 4년 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의료보험공단’이라고 표시된 출구 안내 점자 표지.
◇엉뚱한 정보 주는 ‘아주 오래된’ 점자 안내

마포구 공덕역 1번 출구에 부착된 점자 안내는 ‘5ㆍ6호선 공덕역’으로 읽힌다. 그러나 바로 앞 일반 안내판엔 출구 번호를 비롯해 네 종류의 운행 노선이 모두 표시돼 있다. 해당 점자는 6호선이 개통된 2001년 설치됐고 그 사이 경의중앙선과 공항철도가 연결됐지만 단 한차례도 정비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 내부에 설치된 출구 안내 점자 표지도 업데이트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일반 안내판에 경의선숲길과 주변에 새로 들어선 관공서 등이 나와 있는 반면 점자 안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방면’이라고만 돼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4년여 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1~4호선 역에 설치된 점자 표지판은 이미 정비를 마쳤고 5~8호선은 현재 점검 중“이라며 “앞으로 직원들이 상시 점검해 보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화장실이나 계단 등 점자의 설치 위치가 잘못된 경우도 있었다. 조씨는 “가끔 바람과 새소리로 출구를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며 “자립 보행이 가능한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혼동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도 못 알아보는 엉터리 점자

“이거 뭐지? 우리가 쓰는 점자가 아닌데?” 공덕역을 나서던 조씨가 화살표 모양으로 배열된 점자를 더듬으며 말했다. 비장애인의 눈엔 화살표로 보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겐 아무 의미 없는 ‘엉터리 점자’는 과연 누굴 위해 만들어진 걸까.

점자는 가로 2칸, 세로 3칸의 공간에 점을 배치해 자음과 모음을 만드는데 그 간격이나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의미가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한글점자규정이 엄연히 있지만 공공장소에 설치된 점자 안내 중 상당수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서강대학교 김대건관 3층에 설치된 촉지도의 경우 ‘여학생 휴게실’을 나타낸 점자 중 ‘여’ 부분의 좌우 점 간격이 너무 멀어 ‘ㄱ’ ‘ㅊ’으로 읽혔고, ‘교수실’이 나열된 부분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간격이 제각각이어서 다른 글씨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점 간격이 너무 넓어 다른 글자로 읽히는 경우.

이 같은 혼란에 대해 이진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장은 “사용자인 시각장애인의 입장이 아니라 제작자 입장에서 쉽게 만들다 보니 표준 규격을 무시한 ‘비스무리한’ 점자가 남발하는 상황”이라며 “국가 공인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에 의해 생산 단계부터 감수를 받는 제도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정예진 인턴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wldms461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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