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사랑과 행복을 살게 하는 삶

입력
2019.06.13 04:40
31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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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별거 아닌지 모르지만 제게는 아주 소중한 체험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참 행복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에 대해서 희망과 따듯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속 지니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 지인들과 함께 전주를 가게 되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주전부리를 하지 않아 휴게소에 들러도 그냥 일만 보고 차에 올라타고, 특히 차 안에서는 옆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아무것도 먹지 않는 저입니다.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만 먹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옛날처럼 옆 사람과 나눠 먹기도 그래서 차 안에서는 안 먹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여럿이 같이 가는 여행이었고, 간식을 준비해 와서 같이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일행끼리 앉았기에 먹는 즐거움과 대화의 즐거움을 나눴는데 저는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앉게 되었고 그것도 젊은 여자분, 더 정확히 얘기하면 20대 초반의 아가씨와 같이 앉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옆자리에 아가씨가 앉으면 조심스러워졌는데 제 몸에서 늙은이 냄새가 날까봐 또는 제가 모르는 어떤 것 때문에 불쾌감을 줄까봐 신경을 쓰게 된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전철을 탔고, 빈자리가 있어서 무심코 앉았는데 하필이면 아가씨 옆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앉자마자 그 아가씨가 다른 자리로 옮겨 앉는 거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리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도 나이 먹은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의식하고 있었던 터라 제게서 냄새가 나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아가씨가 다른 이유로 자리를 바꾸고, 제가 괜히 자격지심으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때 경험이 제 의식에 자리 잡게 되었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가씨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 은근히 마음 불편한 데다가 먹을 것이 있는데 혼자 먹어야 하나 같이 먹어야 하나, 아니면 아예 먹지 말아야 하나 작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퇴짜를 맞더라도 같이 먹자고 권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권하였습니다. 역시 괜찮다며 거절을 하였는데 그래도 또 권하니 고맙다며 조금 받아먹는 거였습니다. 그 순간 그런 그가 너무 고마웠고 짧은 시간이나마 괜히 고민을 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요즘 모르는 사람이 권하면, 그것도 먹는 것을 권하면 먹지 말라고 한다는데 모르는 남자가 권하는 것을 선뜻 받아 먹어주니 너무도 고마웠고, 작은 사랑이지만 저의 사랑을 사랑으로 알아주고 믿어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선행과 사랑이 불신을 받는 시대에 그것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사랑을 하는 사람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이 너무도 고마웠고 어둠의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회,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구원받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말입니다. 사랑이 거부되고,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은 정말 암울하지요.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고,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감동적인 것은 더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가 저보다 먼저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에는 남자가 앉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다시 아가씨가 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 옆자리에 다시 아가씨가 앉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제 옆자리에 앉았던 아가씨가 물을 사가지고 와서 드릴 게 이것밖에 없다며 제가 감사를 표할 시간도 주지 않고 정차 시간에 쫓겨 내리는 거였습니다. 제 사랑을 받아준 것만도 고마운데 제 사랑에 고맙다고 하고 보답까지 하니 천사였습니다. 그가 제게는!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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