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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압수수색, 증거 인멸과의 싸움
영화 ‘부당거래’의 압수수색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판사님 검사님 다 제끼고 영장 없이 오셨다? 개념이 참 아쉽네.” 영화 ‘공조’에서 형사 강진태(유해진 분)는 한국 내 북한 조직의 리더를 추적하지만, 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역공을 당한다. 초반부터 영장이 등장하는 ‘부당거래’에선 상황이 다르다. 장석구(유해진 분)는 부하들에게 화풀이를 하면서도 영장을 가지고 장부를 압수하러 온 최철기 형사(황정민 분) 앞에서 손을 쓰지 못한다. 수사관들이 장부를 찾으며 서류를 허공에 던지기도 하지만, 직원들은 죄인처럼 두 손을 모은 채 얌전모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압수수색에서 범인들의 태도는 영장 발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영장은 가지고 왔냐”며 맞서던 기백은 사라지고 푸념한 채 순순히 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사의 첫 단계로서 성공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불리는 압수수색의 현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통상적인 형사 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한다. 수사관을 마주하고서야 자신이 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과자가 아닌 이상 생전 처음 마주하는 검찰 수사관이 법원의 명령서를 제시하면 대게 얼어붙기 마련이다. 반항이래 봐야 집에 없는 척 문을 열지 않거나 연락을 두절하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사회고위층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선 사정이 다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처럼 영장 집행을 방해하거나 고의로 증거를 숨기는 게 비일비재하다. 기업이나 고위공직자를 상대한 이른바 특별수사의 경우, 법무팀이나 변호사들이 영장 청구 단계부터 적극 대응한다는 특징을 무시할 수 없다. 검찰 출신 A변호사는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 재판단계에서야 변호인이 붙지만, 대형 사건은 압수수색 이전부터 찾아내고 숨기는 검찰과 변호사의 수 싸움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회사 입구에서 목표한 사무실까지 진입하는 일부터가 난관일 수 있다. 기업은 한 건물에서 여러 층을 쓰는 경우가 많다. 로비에서 영장을 제시하고 협조를 얻어 압수수색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파악해 이동한 뒤에 임원급 등의 책임자를 불러 압수수색 영장의 내용과 절차를 설명해야 하는데 간단치 않은 일이다. 오해가 없도록 검찰 쪽 인력을 일일이 소개하며 협조를 구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사전작업에는 적어도 1시간 가까이 소요되고 많게는 2~3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영장이 제시되는 순간에도 증거자료의 은폐가 진행되기 때문에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직원이 업무상 사용하던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호주머니에 집어 넣거나, 압수수색을 위해 필요한 정보관리 실무자가 돌연 자리를 비우고 연락을 받지 않는 식이다. 수사관이 입구에 와있다는 연락을 받고 압수수색 대상인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을 떼어 도망하거나 숨는 경우도 있다. 검찰 수사관 B씨는 “수사관들이 모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거라고 예상하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직원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들고 있던 상자에는 그날 압수하려 했던 자료들이 모두 담겨있었다”고 했다.

자료가 없다고 발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에서도 그랬다. 서버 등을 확보하기 위해 진행된 압수수색에서 삼성 측은 “보관기간이 지나 이미 폐기해 버렸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알고 보니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옛 서버는 삼성바이오 공장의 마룻바닥과 직원의 자택에 숨겨져 있었다.

경비업체를 동원해 압수수색 자체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2010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비자금 수사 당시의 압수수색은 아직까지 검찰에서 회자된다. 당시 경비업체 직원들은 회사 로비에서 검사와 수사관들을 몸으로 막아서며 폭행해 실형을 선고 받았다. “방해가 심해지면 112에 신고해 경찰의 도움을 받거나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경우도 있다”고 검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때문에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압수수색의 밀행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사 대상 기업의 변호사들이 정보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검찰 보고라인을 최소화하는 등의 사전작업에 공을 들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십 명의 인력을 투입해 동시다발로 여러 군데를 압수수색 하거나, 수색 당일 새벽 4시쯤 청사에 모였다가 아침 일찍 일사 분란하게 집행에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압수수색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은 그 결과물인 증거자료가 향후 수사와 재판의 향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압수물은 혐의를 입증하는 강력한 물증이 된다. 수사는 범행의 증거를 수집해 기소를 준비하는 과정이라 피해자나 목격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만은 없다. 관련자들이 회유를 당하거나 상황이 바뀌었다며 법정에서 진술을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자료 하나가 백가지 진술보다 낫다’는 말까지 있다. 수도권 검찰청의 간부인 C검사는 “물증을 확보하고 있다면 피고인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검찰 입장에서는 두려울 게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공한 수사로 평가되는 특수수사에는 스릴러물 같은 압수수색 스토리가 항상 따라 다닌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글로비스 9층 사장실의 비밀금고에서 현금 50억여원의 양도성예금증서와 기밀서류 등을 무더기로 발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발견된 자료들은 정몽구 회장의 유죄를 입증하는 확실한 물증이 됐다. 국정농단 의혹 수사에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녹취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는 결정적 단서가 됐고, 영포빌딩에서 쏟아진 다스 문건은 검찰 내부에서도 회의적이었던 BBK수사를 성공으로 이끈 스모킹건이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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