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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켄 그림우드 ‘다시 한번 리플레이’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 포스터.

시간을 되돌려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 생각처럼 술술 풀리지 않을 때, 술술 들어가는 술 한 잔을 앞에 놓고서 누구나 한 번쯤 해 보는 몽상이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꼬리에 무는 이런 고민도 해 본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어디쯤으로 돌아갈까. 대학교 1학년? (그럼, 군대에 다시 가야 하잖아!) 아니면, 언제쯤이 좋을까.

욕심을 조금만 내 보자. 시간만 그냥 되돌리면 말짱 헛일이다. 살면서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똑같이 반복할 게 뻔하다. 가능하면 기억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절대로 한 번 했던 잘못은 저지르지 않을 텐데. 게다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세월을 한 번 살아 봤으니 성공의 기회까지 포착할 수 있겠지.

‘다시 한 번 리플레이(Replay)’는 바로 이런 몽상을 그린 소설이다. 지방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는 43세의 제프 윈스턴은 권태로운 결혼 생활과 숨막히는 직장 생활에 찌들 때로 찌든 상태다. 사방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의 중년. 아니나 다를까. 윈스틴은 1988년 가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 한 장면.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윈스턴은 1963년의 18세 대학생 신입생이다. 25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놀랍게도 전생의 기억도 생생하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연인과는 어떻게 결별했는지부터 그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이나 경마 게임(켄터키 더비)의 우승마까지. 미처 잡지 못해 뒤늦게 후회했던 투자 종목(예를 들어 애플) 목록도 떠오른다.

윈스턴은 이런 기억을 활용해 전생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화려한 삶을 일군다. 부가 넘쳐나는 삶. 비록 전생의 사랑과 다시 결합하지는 못했지만 세심하게 선택한 배우자. 거기다 귀여운 아이까지.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43세가 되자 윈스턴은 다시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눈을 떠 보니 다시 25년 전이다.

43세가 되면 계속해서 ‘리플레이’ 되는 삶.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려 삶을 반복한다고 인생이 쉽지도 않다. 성공적인 삶을 재현해 보려는 윈스턴의 선택은 항상 아쉬움을 남기면서 끝난다. 나중에는 이렇게 반복되는 삶을 아예 멈추려고 해 보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다. 과연 그는 행복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리플레이 
 켄 그림우드 지음ㆍ공보경 옮김 
 노블마인 발행ㆍ451쪽ㆍ1만2,000원 

‘다시 한번 리플레이’는 켄 그림우드가 1986년에 펴낸 작품이다(그림우드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던 40대 초반에 이 소설을 썼다). 3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매력적인 이 작품은 나오자마자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1987)와 경쟁해서 1988년 세계 판타지 상을 수상하더니,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SF 판타지로 꼽힌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감을 잡았겠지만, ‘다시 한 번 리플레이’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나 드라마는 부지기수다. 예를 들어, 눈만 뜨면 계속 반복되는 같은 날에 갇힌 주인공을 삶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 ‘사랑의 블랙홀’(1993)이 바로 이 소설의 설정을 살짝 변주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다시 한번 리플레이’는 199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고 나서, 2009년에 다시 나왔으나 현재는 품절 상태다. 중고 서점에서 정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서너 권이 유통될 뿐이다. 누구나 생각해 봄직한 몽상을, 결코 상투적이지 않은 인생에 대한 품격 높은 성찰의 이야기로 탄생시킨 이 현대의 고전을 서점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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