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경마저 눈물겨운…전쟁의 상흔 품은 비밀의 정원

입력
2019.06.04 18:00
수정
2019.06.04 19: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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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분단으로 사라진 도시, 철원 김화읍

철원 김화읍 민통선 안의 용양보. 한국전쟁 후 경계 근무를 하는 군인들이 이용했던 출렁다리 발판이 떨어져 설치미술 작품처럼 걸러 있다. 철원=최흥수 기자
철원 김화읍 민통선 안의 용양보. 한국전쟁 후 경계 근무를 하는 군인들이 이용했던 출렁다리 발판이 떨어져 설치미술 작품처럼 걸러 있다. 철원=최흥수 기자

아직까지 쉬리를 본 적은 없다. 민물고기라는 것만 알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봤어도 못 본 거나 마찬가지다. 김화교 다리 위를 장식한 대형 쉬리 조형물을 보고 물고기보다 영화 제목이 먼저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 ‘쉬리’는 분단 현실을 배경으로 액체 폭탄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정보기관과 북한의 특수 8군단 사이에 벌어지는 긴박한 대결을 그리고 있다. 20년 전 상영한 영화다. 의도했든 아니든 접경지역 철원 김화읍 초입에 세운 쉬리 조형물이 무심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도시 김화읍과 서면 와수리

철원 땅은 분단으로 찢기고 갈라져 실제 지명과 행정 중심이 분리된 곳이 많다. 행정구역상 철원읍은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되고, 분단 이후에는 대부분이 민통선 이북 지역으로 묶였다. 현재 군청은 흔히 신철원이라 불리는 갈말읍에 있다.

읍소재지인 김화읍 학사리 초입의 어부 조형물. 화강을 가로지르는 ‘김화교’ 위에 쉬리와 다슬기 조형물도 함께 있다.
읍소재지인 김화읍 학사리 초입의 어부 조형물. 화강을 가로지르는 ‘김화교’ 위에 쉬리와 다슬기 조형물도 함께 있다.
화강 쉬리공원에서 본 학사리. 읍사무소가 있는 마을이지만 교회 첨탑만 제방 위로 솟아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는 강 마을이다.
화강 쉬리공원에서 본 학사리. 읍사무소가 있는 마을이지만 교회 첨탑만 제방 위로 솟아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는 강 마을이다.
김화교 다리 위의 쉬리 조형물과 학사리 풍경.
김화교 다리 위의 쉬리 조형물과 학사리 풍경.

신철원에서 동쪽으로 약 20km를 달리면 서면 와수리다. 분명 철원의 동쪽인데 서면(西面)이다. 기준이 철원이 아니라 김화이기 때문이다. 근동면ㆍ근북면도 김화읍을 중심에 놓은 지명이다. 그런데 김화중학교와 고등학교, 도서관과 김화성당 등 읍 사무소를 제외한 김화의 공공시설은 대부분 서면 와수리에 있다. 동서울ㆍ수유리ㆍ의정부로 가는 버스도 와수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리 단위에선 드물게 오일장(1ㆍ6일)까지 열리는 와수리는 실질적으로 김화읍의 중심이다.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이 많아 시골마을답지 않게 활력이 넘친다. 도로 주변 상가는 PC방, 편의점, 커피숍, 제과점 등 젊은층을 겨냥한 점포가 점령했다. ‘와수’라는 지명도 북한 땅 오성산에서 바라보면 기와지붕이 물결치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으니, 예부터 풍족한 마을이었던 듯하다.

김화읍과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서면 와수리. 휴가와 외출 나온 군인이 많아 산골마을 치고는 활력이 넘친다.
김화읍과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서면 와수리. 휴가와 외출 나온 군인이 많아 산골마을 치고는 활력이 넘친다.
와수터미널 인근 상가도 대부분 군인과 젊은 층을 겨냥한 업소다.
와수터미널 인근 상가도 대부분 군인과 젊은 층을 겨냥한 업소다.
길거리 꽃가게와 와수전통시장. 끝자리 1ㆍ6일이 장날이다.
길거리 꽃가게와 와수전통시장. 끝자리 1ㆍ6일이 장날이다.

철원군의 일개 읍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김화는 1935년 9만7,000여명의 인구와 1개읍 11개면을 거느린 군이었다. 인근 철원과 화천은 말할 것도 없고 춘천보다 인구가 많았다. 그러나 화려했던 김화의 모습은 자료로만 남아 있다. 현 김화읍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5km를 더 들어간 생창리에 ‘사라진 마을 김화 이야기’ 전시관이 있다. 금강산철도가 지나는 김화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읍내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았다. 동일은행 김화지점을 비롯해 식량소매조합, 상공회, 목재조합, 제탄조합, 체육협회, 주조조합 등 전시장에 열거한 여러 직능단체의 면면만 봐도 김화의 군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된다. 생창리와 읍내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김화읍은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흔적도 없이 파괴되고, 분단 이후에는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으로 묶였다.

옛 김화읍의 번화가였던 생창리 입구. 지금의 생창리는 1970년에 조성된 민북마을이다.
옛 김화읍의 번화가였던 생창리 입구. 지금의 생창리는 1970년에 조성된 민북마을이다.
1970년 재향군인 위주로 100가구가 입주한 생창리마을. 현재 약 8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1970년 재향군인 위주로 100가구가 입주한 생창리마을. 현재 약 8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생창리 ‘김화 이야기관’에서 전쟁으로 사라진 김화읍의 옛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생창리 ‘김화 이야기관’에서 전쟁으로 사라진 김화읍의 옛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김화 이야기관’ 내부에 김화역 일대 풍경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았다.
‘김화 이야기관’ 내부에 김화역 일대 풍경을 미니어처로 재현해 놓았다.
생창리에서 나고 자라 전쟁까지 치른 이을성 할아버지가 ‘DMZ생태평화공원’ 탐방객에게 옛 김화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다.
생창리에서 나고 자라 전쟁까지 치른 이을성 할아버지가 ‘DMZ생태평화공원’ 탐방객에게 옛 김화의 모습을 얘기하고 있다.

지금의 생창리는 1970년에 재건된 민북(민간인 통제선 이북) 마을이다. 마을회관 입구에 세워 놓은 ‘생창리마을 입주 기념비’에는 재향군인 100가구 입주민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화강을 끼고 외관이 엇비슷한 주택이 도로 양편으로 이어져 있다. 입주 당시엔 집 한 채에 두 가구가 살았다. 생창리 61번지에서 나고 자라 이곳에서 전쟁까지 치렀다는 주민 이을성(86)씨는 혹시라도 간첩이나 수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에서 바로 신고할 수 있도록 지은 구조라고 말했다. 생창리에 지금처럼 외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된 것도 10여년에 불과하다. “첨에는 형제ㆍ친척도 맘대로 들어오지 못했어. 누가 찾아온다고 하면 김화읍사무소까지 나가서 신고하고 직접 데리고 와야 했지. 지금이야 이렇게 카메라 들고 맘대로 찍지만 그전에는 어림도 없었어.”

◇생창리와 DMZ생태평화공원

그렇게 외부와 철저히 고립돼 있던 생창리에도 3년 전부터 외지인의 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 철원군에서 ‘DMZ생태평화공원’ 탐방을 진행하면서부터다. 탐방 프로그램은 생창리 마을회관 옆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해 십자탑과 용양보를 돌아오는 2개 코스로 진행된다. 오전 10시,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진행하고 코스별 정원은 40명이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마을에서 비무장지대 코앞까지 포괄하는 자연공원이다. 단체 버스 이용객이 아니면 센터에서 운영하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민통선이기 때문에 맨 앞 차에는 군인이 동승한다. 지난 주말 용양보 코스 탐방에 동행했다.

김화와 화천을 연결하던 암정교. 콘크리트가 떨어져 교각에 앙상한 철근이 드러나 있다.
김화와 화천을 연결하던 암정교. 콘크리트가 떨어져 교각에 앙상한 철근이 드러나 있다.
암정교 부근 도로원표. 군데군데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암정교 부근 도로원표. 군데군데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암정교에서 화강 제방을 따라 용양보까지 약 20분을 걷는다.
암정교에서 화강 제방을 따라 용양보까지 약 20분을 걷는다.

첫 번째 검문소를 지나면 길 오른편으로 화강이 흐르고 왼편 산자락은 막 모내기를 마친 논이다. 바로 김화역이 있던 곳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철길이 있던 자리는 수로로 바뀌었다. 뒤편으로 북측 오성산이 우뚝하고, 바로 아래 남측 꼭대기까지 산길이 이어진 작은 봉우리가 보인다. 지난해 9.19남북군사합의 이후 철거한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가 있던 자리다.

차는 곧바로 화강 제방에서 멈춘다. 화강은 북한 김화군 수리봉에서 발원해 DMZ를 거쳐 한탄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총 43.6km 중 23.5km가 남측 구간이다. 탐방객이 차에서 내린 곳은 암정교 앞이다. 1930년에 건설한 암정교는 김화와 화천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방치된 교각은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앙상한 철근이 드러나 있다. 바로 뒤에는 이곳이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리는 도로원표가 남아 있다. 서울 OOOkm, 원산 153.5km, 화천 43.9km라 새겨져 있는데 군데군데 총탄 자국으로 부서져 있고, 숫자가 한자로 표기돼 있어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

용양보 제방 위 교각. 철원과 내금강을 잇는 금강산전기철도가 지나던 곳이다.
용양보 제방 위 교각. 철원과 내금강을 잇는 금강산전기철도가 지나던 곳이다.
군인들이 이용했던 무더진 출렁다리 밧줄에 가마우지가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군인들이 이용했던 무더진 출렁다리 밧줄에 가마우지가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이곳부터 제방을 따라 용양보까지 약 20분을 걷는다. 이곳 해설사는 물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며 미안해하는 기색이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늪이 풍기는 원시의 기운은 탄성마저 잠재우기 충분했다. 둑방길 끝의 용양보는 옛 금강산전기철도가 지나던 교각이었다. 1919년 공사를 시작해 1931년 철원역~내금강역 116.6km 전 구간을 개통한 이 철도를 이용하면 김화역에서 금강산까지는 3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연간 15만여명의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금강산 철도는 그러나 1944년 전쟁 물자 부족을 겪던 일제가 일부 구간 궤도를 철거했고, 한국전쟁으로 전 구간이 폐선되고 말았다. 지금 농지에 물을 대는 수로가 선로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 이곳에 기차가 다녔던 흔적은 사실상 용양보 교각이 유일하다.

교각 위를 걸을 수는 없지만, 다리 초입의 전망대에 오르면 눈물겹게 아름다운 전쟁의 또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물에 잠긴 버드나무 군락을 비롯해 늪지대는 뒤늦게 초록이 눈부신데, 그 앞으로 발판이 떨어져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출렁다리가 있다. 수복 직후 경계근무를 하던 병사들이 오가던 다리였다. 물에 비친 그 세월의 풍상이 설치작품인 듯도 하고, 한 폭의 수채화 같기도 해 말문이 턱 막힌다. 탐방객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지대와 연결된 밧줄에는 민물가마우지가 음표처럼 앉아 있다. 인기척에 놀랄 법도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절대 정적을 유지한다. 한낮의 땡볕에 무성한 새소리만 이명처럼 귓가에 웅웅거린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 대화 장면이 오버랩된다. 정중동의 팽팽한 긴장감이 빚은 절대 미학이자 DMZ의 두 얼굴이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인데 용양보의 버드나무 군락은 이제 초록빛이 싱그럽다.
녹음이 짙어가는 6월인데 용양보의 버드나무 군락은 이제 초록빛이 싱그럽다.
용양보의 작은 바위에 쉬던 자라가 물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용양보의 작은 바위에 쉬던 자라가 물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용양보는 한국전쟁 이후 70년 가까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 원시의 늪, 비밀의 정원이다.
용양보는 한국전쟁 이후 70년 가까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 원시의 늪, 비밀의 정원이다.

용양보 탐방로의 마지막 코스는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 철책 바로 앞이다. 닭볏처럼 우뚝 솟은 계웅산 아래 늪지대가 넓게 형성돼 있다. 무성한 수풀 아래 하얗고 노란 들꽃이 지천이다. 한겨울이면 두루미가 줄 지어 날아가는 산자락으로 이따금씩 백로가 날갯짓한다. 자라 몇 마리가 길쭉한 목을 내밀고 바위 위에 올랐다 자맥질하고, 투명한 물속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친다. 그 중에 분명 쉬리도 있을 것 같다. “민족사의 가장 처절한 아픔을 간직한 이곳에서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들으며 여러분의 상처받고 응어리진 마음도 조금은 치유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해설사의 멘트를 마지막으로 1시간30분간의 비밀의 정원, 사라진 도시 김화읍 여행이 마무리된다.

◇김화 여행 정보

김화읍과 DMZ생태평화공원 일대. 그래픽=강준구 기자
김화읍과 DMZ생태평화공원 일대. 그래픽=강준구 기자

▦구리포천고속도로 종점인 신북IC에서 생창리까지는 약 51km, 1시간가량 걸린다. 동서울과 수유리에서 와수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제법 있지만 와수리에서 생창리를 오가는 시골버스는 드문드문 운행한다. 탐방 시간에 맞추려면 자가용을 이용하길 권한다. ▦생창리의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탐방은 인터넷이나 전화(033-458-3633)로 예약할 수 있다. 탐방료는 성인 3,000원이며 신분증을 필히 지참해야 한다. ▦김화읍 초입 ‘화강쉬리공원’에는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놀이터와 수영장, 강변 산책로와 징검다리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1급수에 서식하는 쉬리를 공원 명칭으로 했지만, 이곳의 주요 즐길거리는 다슬기 잡기다. 매년 8월 화강 일대에서 다슬기축제가 열린다.

철원=글ㆍ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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