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선거 개입 지시에 승진 목맨 정보경찰 부화뇌동

입력
2019.06.03 15:00
수정
2019.06.03 22:33
10면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실 지시로 총선 등 친박에 맞춤 정보 제공

/그림 1 강신명(왼쪽), 이철성 전 경찰청장이 15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박근혜 정부 정보 경찰의 불법 선거개입은 청와대의 노골적 지시와 승진 점수에 목맨 정보경찰들의 일사불란한 충성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경찰 정보국에 대한 존폐 논란도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김성훈)는 3일 정보경찰을 활용해 정치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위반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강신명(55) 전 경찰청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불법선거 정보 수집을 지시한 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현기환(60)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 4명과 강 전 청장의 지시를 받아 불법 선거 정보 등을 실제로 수집ㆍ취합한 이모 경찰청 차장 등 3명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지시로 정보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무수석이 수석비서관 회의 등에서 확인된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정보 수집 계획을 세운 뒤 청와대에 파견 나온 치안비서관에게 관련 내용을 지시하면 경찰청장과 정보국장에게 관련 내용이 전달됐다. 이후 정보국은 각 정당 및 정부부처 등에 파견된 정보경찰에게 '전국 판세분석 및 선거대책', '지역별 선거동향' 등을 작성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각급 정보경찰이 작성한 불법 선거 정보는 역순으로 취합돼 정무수석실로 보고됐다.

정무수석실의 지시는 경찰의 상명하복식 업무평가 시스템 덕분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검찰에 따르면 '눈치 없이' 청와대 입맛에 맞지 않는 보고서를 올린 분석관 등은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경찰 정보국 시스템이 설계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누적된 평가는 정보경찰관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 소속 부서 및 경찰서 기관평가에도 반영됐다. 개인의 승진은 물론,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결국 상부의 지시ㆍ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던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2016년 9월 외근정보관 첩보 평가기준’은 치안정보와 무관한 ‘대선 공약집 입수’에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며 "정보 경찰 입장에서는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위법한 정보 수집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라고 했다.

정보경찰의 불법 선거 개입 활동은 2016년 총선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지방선거에선 '보수후보 난립 공론화하여 보수후보 단일화 압박이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제출됐고, 2012년 대선에선 ' 반값 등록금이나 군복무 단축 등 야권의 비현실적 공약의 허구성을 부각하는 대책'에 대한 보고서도 정무수석실에 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현 전 수석보다 더 윗선에서 선거개입 지시를 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며 "2012년 공직선거법 강화 법률 개정이 이루어졌음에도, 정보 경찰이 선거 개입 정보활동을 지속한 것은 사안이 중대하고 죄질 또한 매우 불량하다"고 강조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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