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중독=질병’ 소식에… “프로게이머는 정신질환자인가” 업계 반발

입력
2019.05.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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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은 나쁜 것” 인식 확산 우려… 수출 효자 게임산업도 위기의식 

지난해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진행된 ‘2018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 4강전. 라이엇게임스 제공
지난해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진행된 ‘2018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 4강전. 라이엇게임스 제공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가 확정되자 게임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연 13조원 규모에 달하는 국내 게임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사회학 등 일부 학계도 ‘근거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하고 있어 진통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게임 자체를 술이나 마약과 마찬가지로 중독을 유발하는 유해 콘텐츠로 인식하게 될 거란 위기감이다. WHO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으로 여겨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멈추지 않는 행위를 12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라고 정의했지만, 업계에선 ‘부정적인 결과’나 ‘우선’의 기준이 모호하고 원인과 증상이 명백히 규명되지 않아 불완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게임 개발자는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기성세대 인식에 불을 붙여준 셈”이라며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게임에 쏟아 붓는 프로게이머나 게이머 지망생들마저 정신질환자 취급을 받게 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의료계의 ‘꼼수’라는 주장마저 나온다. 웬만해선 자발적으로 찾아오지 않는 마약ㆍ알코올 중독 환자들과 달리 부모 손에 이끌려 오는 수많은 ‘게임중독’ 청소년들을 노린 ‘과잉 의료화’라는 것이다. 한 사회학 교수는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가 성적 하락이나 집중력 부족 등 각종 문제를 ‘공부에 방해되는’ 게임 탓으로 돌리기가 쉬워지는 셈”이라며 “게임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하는 등 제대로 된 연구가 선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18’에 참가한 관람객들이 다양한 신작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18’에 참가한 관람객들이 다양한 신작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수출 효자’ 노릇을 하던 게임 콘텐츠 산업 규모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따르면 게임에 ‘질병 딱지’가 붙을 경우 2023~2025년 국내 게임시장 매출이 10조원 줄어들고, 8,700여명 규모의 고용이 축소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40억달러(약 4조8,000억원)에 달하는 해외 수출액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관련 88개 단체와 기관들로 이루어진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공대위)’는 오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관계 부처와 국회를 대상으로 WHO 질병코드 국내 도입 반대 운동을 실행할 예정이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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