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려’ 봉준호 “12세에 영화감독 꿈… 이 순간 올 줄 몰랐다”

입력
2019.05.26 04:31
수정
2019.05.26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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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호 눈가에 물기… “대한민국 모든 배우들께 영광 바친다” 

배우 송강호(왼쪽)와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사진촬영 행사에서 트로피를 함께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배우 송강호(왼쪽)와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사진촬영 행사에서 트로피를 함께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세계 최고 영화제에서 최고 영예를 거머쥐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25일(현지시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 최고상을 받기는 처음이다.

폐막식 초대장을 받은 경쟁부문 감독들이 각 부문 수상자로 호명돼 무대에 올라가는 동안 봉 감독 이름은 좀처럼 불리지 않았다. 더 큰 상을 받게 될 거라는 기대감도 점점 커졌다. ‘펄프픽션’(1994) 이후 25년 만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칸 정복을 노리던 쿠엔틴 타란티노(미국) 감독도 시상식에 참석한 터라, 두 사람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심사위원장이 가장 마지막에 이름을 부른 사람은 봉 감독과 ‘기생충’이었다.

봉 감독은 오른 팔을 번쩍 치켜들고 굳세게 주먹을 쥐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우렁찬 환호 속에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봉 감독은 “프랑스어 연설은 준비 못하지만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며 칸영화제 주최 측에 전하는 감사 인사로 운을 뗐다. 그는 “‘기생충’은 영화적으로 큰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가 가능했던 건 저와 함께 한 수많은 아티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홍경표 촬영감독과 이하준 미술감독을 비롯해 아티스트들께 감사하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와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에도 감사하다”고 영화 작업을 함께한 동지들을 떠올렸다.

수상 소감을 이어가던 봉 감독은 “무엇보다 ‘기생충’은 배우들이 없었다면 찍을 수 없었다. 함께 해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 특히 이 자리에 함께 해 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 님의 소감을 듣고 싶다”면서 무대에 함께 오른 송강호에게 잠시 자리를 양보했다.

송강호의 눈가엔 물기라 어려 있었다. 송강호는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 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 모든 배우들께 이 영광을 바치겠다”는 말로 벅차 오르는 기쁨을 대신했다.

봉 감독은 뤼미에르 대극장 2층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족들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가족을 바라보며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음 짓던 봉 감독은 그의 영화 인생을 잠시 되감아보며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저는 그냥 열두 살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 이 트로피를 제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봉 감독은 테이블에 놓인 트로피를 가볍게 쓰다듬었고, 객석에 자리한 전 세계 영화인들은 뜨거운 기립박수로 봉 감독을 축하했다.

영화 '기생충'.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칸영화제는 어느 해보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초청돼 수상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뜨거웠다. 칸영화제는 봉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기며 새로운 거장의 탄생을 알렸고, 다른 주요 부문은 거장과 신예에게 두루 안배했다.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마티 디옵(프랑스) 감독의 ‘아틀란티크’가 수상했다. 디옵 감독은 칸영화제 72년 역사상 최초로 경쟁부문에 오른 흑인 여성 감독이다. 심사위원상은 라지 리(프랑스) 감독의 ‘레 미제라블’과 클레버 멘돈사 필로ㆍ줄리아노 도르넬레스(브라질) 감독의 ‘바쿠라우’가 공동수상했다. 심사위원대상 디옵 감독과 심사위원상 라지 리 감독은 생애 처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트로피까지 거머쥐는 반란을 일으켰다.

감독상은 ‘영 아메드’의 장-피에르ㆍ뤼크 다르덴(벨기에) 형제 감독에게 돌아갔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로제타’(1999)와 ‘더 차일드’(2005)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최우수남자배우상은 ‘페인 앤드 글로리’(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에서 호연을 펼친 스페인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차지했고, 최우수여자배우상은 ‘리틀 조’(감독 에시카 하우스너)에 출연한 영국 배우 에밀리 비샴이 차지했다. 각본상에는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셀린 시아마(프랑스) 감독이 호명됐다. 이 영화는 시상식 직전까지 영국 일간 가디언을 비롯해 해외 언론들이 ‘기생충’과 함께 황금종려상 유력후보로 거론했던 작품이다.

폐막식 마지막 순간 봉 감독과 ‘기생충’이 호명되자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프레스룸에도 환호성이 터졌다. 한국 기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쁨을 만끽했고, 해외 기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축하를 건넸다. 몇몇 해외 기자들은 일찌감치 봉 감독의 수상을 확신하며 한국 기자들에게 “봉이 받을 것”이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칸영화제는 올리비에르 나카체ㆍ에릭 토레다노(프랑스) 감독의 ‘더 스페셜즈’를 25일 폐막식에서 마지막 상영작(폐막작)으로 상영하며 12일간의 축제를 마쳤다. 봉 감독은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품에 안고 26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27일 낮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28일에 ‘기생충’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리며 30일 마침내 한국 관객과 만난다.

◇수상작

▦ 황금종려상= ‘기생충’ 봉준호 감독

▦ 심사위원대상= ‘아틀란티크’ 마티 디옵 감독

▦ 심사위원상= ‘레 미제라블’ 라지 리 감독, ‘바쿠라우’ 클레버 멘돈사 필로ㆍ줄리아노 도르넬레스 감독

▦ 감독상= ‘영 아메드’ 장-피에르ㆍ뤼크 다르덴 형제 감독

▦ 최우수남자배우상= ‘페인 앤드 글로리’ 안토니오 반데라스

▦ 최우수여자배우상= ‘리틀 조’ 에밀리 비샴

▦ 각본상=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셀린 시아마 감독

▦ 심사위원특별언급상= ‘잇 머스트 비 헤븐’ 엘리아 술레이만 감독

▦ 황금촬영상= ‘누에트라스 마드레스’ 세자르 디아즈 감독

▦ 단편영화상= ‘더 디스턴스 비트윈 어스 앤드 더 스카이’ 바실리스 케카토스 감독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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