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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부품 해외 의존에 위기감

대기업 센터장 내려놓고 창업

등록 특허 201건 등 시장 선도

‘네패스’의 미세 패키징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반도체. 네패스 제공

매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반도체 부품 전문기업 ‘네패스’의 본사 강당에는 직원들로 가득 찬다. 이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슈퍼스타!”라고 소리 높여 인사하는가 하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서로에게 감사의 편지도 쓴다. 그러다가 일제히 합창도 한다. 합창을 위한 신청곡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직원들은 늘 하루를 밝고 유쾌하게 시작한다. 네패스는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그래티튜드(Gratitude) 경영’이 지속 성장의 토대라고 말한다.

1990년 설립돼 30년간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끈 네패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패키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연 매출 3,000억원, 직원만 2,000여명인 대표적인 중견기업이다.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들이 일반 소비자에겐 생소하지만, 네패스는 소비자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사람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는 네패스의 미세 패키징 기술이 담긴 시스템 반도체가 다수 탑재돼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연산, 논리 등 정보 처리 기능을 수행한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 때문에 산업 체인별 전문화와 부문 간 협업이 중요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생산 기업을 의미하는 ‘파운드리’, 생산은 하지 않고 반도체 설계만 하는 업체를 일컫는 ‘팹리스’, 반도체를 패키징ㆍ검사하는 전문업체인 ‘OSAT’가 원활하게 소통 협업하는 생태계가 조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네패스는 시스템반도체 불모지인 한국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며 미국, 유럽 등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기업이다.

이병구 ‘네패스’ 회장

그러나 반도체 시장에서 국산 제품이 자리잡은 건 최근의 일이다. 1970~80년대 만해도 반도체ㆍ디스플레이 분야 주요 소재ㆍ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거의 100%였다. 1978년 입사한 LG반도체에서 생산기술센터장 자리까지 올랐던 이병구(73) 네패스 회장은 이러한 상황에 눈을 떴다. 국산화 수준을 높이지 못하면 장기적인 반도체 산업 발전 과정에서 결국 끌려 다니게 될 거라 내다본 것이다. 그는 LG반도체를 나와 1990년 네패스의 전신인 ‘크린크리에티브’를 창업했다. 2년 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공정용 현상액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1999년에는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다.

2000년대 들어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서비스의 중요성도 커졌다. 반도체 패키징은 반도체와 기기를 연결하기 위해 전기적으로 포장하는 공정을 말한다. 반도체를 묶어 부피를 줄이고, 속도를 향상시키는 게 관건이다. 이 회장은 이 때 시스템반도체 패키징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이 회장의 결단에 우려의 시선이 컸다. 반도체 하면 메모리, 패키지는 ‘금속 지네발’이 달린 검정 사각 패키지가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과감하게 밀어부쳤다. 2004년 반도체용 범핑 기술로 미국 특허권을 취득한 뒤 2006년 금속 연결선 대신 반도체 미세 패턴을 이용해 칩을 초소형으로 패키징하는 ‘웨이퍼레벨패키지’ 기술, 2014년 다수의 칩을 한 번에 묶는 ‘팬-아웃 웨이퍼레벨패키지’ 기술 상용화에 성공했다. 모두 국내 최초다. 2017년에는 차세대 반도체패키지 기술로 주목받는 ‘패널레벨패키지’ 양산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특허 출원은 182건, 등록한 특허는 201건에 달한다.

그 결과 네패스는 2006년 벤처기업대상 은탑산업훈장을 받았고,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속가능경영 우수기업’, 2015년 중소기업청의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국가생산성대회 ‘4차산업혁명 선도기업’ 국무총리 표창과 국가경쟁력대상 제조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메모리 반도체 이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 시스템 반도체 코리아의 재탄생을 꿈꾼다”는 네페스의 꿈은 계속 무르익고 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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