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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 소수자 왼손잡이]
우타자 많아 2ㆍ3구 송구 때 불리… 어깨 강한 왼손잡이는 투수로 선호
오른손 포수 세상인 현대 야구. 사진은 왼쪽부터 SK 이재원-두산 박세혁-KIA 김민식. SK, 두산, KIA 제공

“혹시 왼손 포수 본 적 있으세요?”

많은 야구인들에게 물어봤지만 모두들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 사상 왼손 포수는 전무했다. 일본프로야구 출신 LG의 세리자와 유지 배터리 코치와 메이저리그에서 포수로 활약한 NC의 외국인 타자 크리스티안 베탄코트 역시 “야구를 하는 동안 왼손잡이 포수를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왼손 포수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1800년대 후반 시작한 메이저리그에서 한 차례 이상 포수 마스크를 쓴 왼손잡이는 총 30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현대 야구와 거리가 멀었던 초창기 시절의 선수들이다. 양대 리그가 정착된 1901년 이후로 좁히면 7명뿐이다. 가장 최근은 1989년 베니 디스테파노가 피츠버그에서 3경기를 뛰었다. 이들 대부분은 주 포지션이 포수가 아니라 팀 사정상 임시로 안방을 지켰다. 정말 왼손 포수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선수는 1884년부터 1900년까지 통산 1,073경기를 뛴 잭 클레멘츠가 유일하다.

메이저리그에서 1,000경기 이상 유일하게 왼손 포수로 활약한 잭 클레멘츠. 뉴욕공립도서관 홈페이지 캡처
◇우타자가 대부분, 2루 송구때 오른손 포수가 유리

왼손 포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그 답을 포수의 2루 송구에서 찾았다. 좌타자보다 우타자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 2루에 송구할 때 오른손 포수가 훨씬 유리하다는 것. 프로야구 원년 멤버이자, 명포수 출신인 이만수 전 SK 감독은 “타석에 우타자가 있으면 왼손 포수는 2루 송구 시 방해를 받는 반면 오른손 포수는 1루 주자의 움직임까지 보면서 2루 송구를 방해 받지 않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 좌타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우타자가 더 많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올해 등록 541명 가운데 327명(60.5%)이 우타자였고, 좌타자 202명(37.3%), 양손타자 12명(2.2%)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세밀한 야구를 하는 지금 도루성공률 통계만 볼 때 오른손 포수가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통계전문 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2018년도 우타자 타석 때 도루 성공률(73.8%)이 좌타자 타석 때 도루 성공률(71.1%)보다 높았다. 오른손 포수의 송구시 거추장스러운 좌타자가 있을 때 되레 도루를 잡는 비율이 높았다는 것. 이는 도루에는 포수 송구의 방해여부 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내야수 출신 관계자는 “우타자 타석 때 1루 주자가 상대 포수의 사인을 읽고 변화구 타이밍에 뛰면 성공 확률이 엄청 높아진다. 좌타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포수 사인을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3루 송구를 할 때는 왼손 포수가 확실히 불리하다. 오른손 포수는 포구 후 3루 오른쪽 방향으로 바로 송구할 수 있지만 왼손 포수는 한번 몸을 비틀어 던져야 한다. 0.1초 사이로 세이프, 아웃이 갈리는 접전을 감안할 때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셈이다. 1루수를 제외한 왼손잡이 내야수가 없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박도현 키움 배터리 코치는 “왼손 포수가 힘든 건 방향성 문제가 크다”며 “오른손 포수는 2루와 3루에 던질 때 편하고, 홈에서도 3루 주자가 달려오는 방향인 왼손에 미트를 껴서 오른손에 미트를 끼는 왼손 포수보다 태그를 더 빨리 할 수 있다”고 했다.

KIA 포수 한승택이 SK 로맥을 홈에서 태그하고 있다. KIA 제공
◇어깨 좋은 왼손잡이는 투수, 외야수로

포수의 송구가 자연스럽게 휘어지는 현상도 한몫 한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일반적으로 오른손 잡이가 송구를 하면 오른쪽 방향으로 휘고, 왼손 잡이가 하면 왼쪽으로 휜다”며 “오른쪽으로 휘어야만 1루에서 2루로 뛰어드는 주자를 자연 태그 아웃 시킬 수 있는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오른손 포수의 송구는 슬라이스 성(직선으로 날아가다 오른쪽으로 휘는 것)으로 많이 가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왼손이나 오른손의 송구보다 더 중요한 건 선수로 커나가는 성장 환경이다. 포수는 기본적으로 어깨가 강해야 하는데, 어깨 좋은 왼손잡이 선수를 굳이 포수로 키우려는 지도자가 없다. 가뜩이나 귀한 왼손 투수로 성장시킬 수 있는 재목이기 때문이다. 야구를 처음 배우고 즐기는 초등학교 시절에야 왼손 포수를 볼 수 있지만 결국 강점을 더욱 살리기 위해 투수나 외야수로 전향한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베이브 루스는 어린 시절 왼손 포수로 시작했다. 왼손잡이인데도 학교에 오른손잡이용 포수 미트 밖에 없어 왼손으로 공을 받았다. 2루나 3루로 송구를 해야 할 때면 잡은 공을 허공에 띄워놓고 재빨리 미트를 벗고 왼손으로 공을 던져 주자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강한 어깨의 강점을 살려 투수와 외야수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됐다.

한화 송진우 투수코치의 아들 송우현(경찰청)도 왼손 포수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 홈에서 2루까지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가 없어 포수를 보다가 중학교에 진학한 뒤 투수로 전향했다. 2015년 히어로즈에 입단할 때는 외야수로 지명을 받았다.

왼손 포수를 하고 싶어도 장비가 없어 못한다. 왼손잡이 포수용 미트는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구하기 힘들다. 기성품은 아예 없고 특별 주문 제작을 해야 한다. 글러브 제작 업체 ‘위팬’의 이성수 차장은 “10년간 왼손 포수 미트 제작 의뢰가 딱 한번 있었다”며 “주문자는 엘리트 선수가 아닌 사회인 야구에서 뛰는 분이었다”고 떠올렸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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