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돈 잘 쓰는 법

입력
2019.05.22 18:00
30면
구독

“여러분이 지금 이 신성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그동안 여러분을 도와준 공동체의 덕분이다.”

19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흑인 남성 대학인 모어하우스칼리지 졸업식장에서 사모펀드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의 로버트 F. 스미스(57) 회장이 졸업생 396명의 학자금 대출 4,000만달러(약 478억원)를 모두 갚아 주겠다고 발표하기 전 한 말이다. 35분간 이어진 축사 마지막에 그는 “이 나라에서 8대를 산 우리 가족을 대표해 여러분의 여정에 연료를 조금 넣어드리려 한다”며 빚 탕감을 선언했다. 그는 “나는 여러분이 이를 앞으로 (공동체에) 갚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는 공동체를 돌볼 역량이 있고, 이를 행동과 말로 증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1CcRphVnM)

□ 보유 순자산만 40억달러(약 4조7,800억원)인 스미스 회장은 미국 흑인 중 첫 번째, 미국에선163번째, 세계에선 480번째(포브스 기준) 부자다. 부모 모두 박사인 흑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코넬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골드만삭스에서 애플 등 소프트웨어 회사의 인수합병에 관여한 경험을 살려 2000년 비스타를 세웠는데, 이 펀드가 운용하는 자산은 현재 460억달러나 된다.

□ 하필 모어하우스칼리지에 기부한 것은 이 곳이 흑인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온 학교로, 흑인 공동체 사회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스미스 회장의 어머니는 1963년 돌도 지나지 않은 그를 안고 ‘워싱턴 행진’에 참가했다. 당시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연설을 통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되는 나라’를 호소했다.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흑인 갓난아이가 이제 거부가 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의 주인공이 됐으니 킹 목사의 꿈이 실현됐다 해도 무방하다. 스미스 회장도 졸업식 축사 중 상당 부분을 킹 목사 추모에 할애한 뒤 ‘아메리칸 드림’과 기회의 균등을 강조했다.

□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며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다. ‘나‘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도 약해지고 있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기부 지수 순위는 144개국 중 60위였다. 케냐나 아이티공화국보다 낮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1963년 ‘워싱턴행진’ 당시 연설 중인 마틴 루터 킹 목사.
1963년 ‘워싱턴행진’ 당시 연설 중인 마틴 루터 킹 목사.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