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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의 니코틴은 10대의 뇌를 손상시킨다. (‘쥴링에 대해 알려진 근거 없는 거짓말 10’ Vaping360.com 제공)

세대 차이는 고금을 막론한다. 요즘 언어만 봐도 그렇다. 급식체, 학교에서 급식을 받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문자체라는 뜻이다. ‘ㅇㅈ? ㅇㅇㅈ’(인정? 어 인정)처럼 초성만 쓰기도 하고 ‘핵인싸’(핵심 인사이더)처럼 축약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오지고지리고렛잇고아미고알파고’(좋다)라는 생소한 표현들이 조합되면 이건 안드로메다의 언어다. 그래도 어머니들은 온라인에서 떠도는 급식체 사전을 참고하여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하신다.

젊은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도 꽤 낯설다. 버스킹이 한 예다. 사전적 의미는 ‘거리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공연하는 행위’다. 거리공연이라고 말해도 될 법한데, 젊은이들은 꼭 버스킹이라고 한다. 십대 아이들을 둔 어머니들은 이러한 생소한 용어에 바짝 긴장하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신다.

이번엔 더 강력하고 무서운 것이 바다를 건너온다. ‘쥴(JUUL)’이라고 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다. 손가락 정도 길이에 USB 메모리같이 생겼는데 ‘포드(POD)’라고 불리는 카트리지를 끼워 피운다. 이 포드 하나가 담배 한 갑과 맞먹는다. 충전도 편하고 스마트폰과도 연결된다. 스마트폰 세대인 젊은이들에게 최적화된 셈이다. 게다가 연기와 냄새가 적으니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피워도 선생님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단다. 이 때문에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1년 만에 고등학생들 사이에 78%,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48% 증가했다. 미국 보건당국은 발칵 뒤집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전자담배가 십대들 사이에서 전염병 수준으로 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기는 유행을 업고 문화로 정착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지는 ‘쥴’ 문화에 대한 경고 기사를 작년에 시리즈로 냈다. 원래 전자담배를 피운다는 뜻의 ‘베이핑(Vaping)’을 ‘쥴링’(JUULing)‘이라는 미국판 급식체가 대체했을 정도다.

담배 회사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담배가 ‘멋지고 인기 있는 것’이라는 친흡연 규범을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금액을 과거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낙타를 의인화한 카멜 담배의 캐릭터 ‘올드 조’가 3~6세 미국 어린이들 사이에서 미키마우스만큼 친숙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담배 마케팅의 핵심 주제는 트렌드, 자유, 성적 매력 등 젊은이들의 호기심과 반항심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한결같았다. ‘흡연은 멋지다’는 십대의 규범을 무너뜨리기 위해 보건당국은 수십 년간 고군분투했다. 이제는 지금껏 듣도 보지도 못했던, ‘듣보잡’ 담배들과 싸워야 한다. 학계의 예측에 따르면 2018년에 전자담배 종류는 700개 이상, 향료는 1만5,000개 이상이란다. 모양 역시 제각각이다. 정부가 일일이 규제하기에는 힘이 부친다. 전자담배는 덜 해롭다고 하는데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다. 또한 제품에 정확히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는 회사만 안다. 회사가 제품 성분에 관한 정보를 정부와 국민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흡연자 대다수는 청소년기에 흡연을 시작하며 한 번 시작한 흡연은 니코틴 중독으로 끊기가 어렵다. 흡연율은 감소하는 추세니, 담배 회사의 잠재 고객은 청소년이라는 추론은 어렵지 않다. 한 담배 회사는 ‘담배연기 없는 미래’를 비전으로 내세웠다. 전자담배, 무연 담배 등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청소년들이 몰래 담배를 피우다 연기나 냄새 때문에 부모님과 선생님께 들켜 혼쭐나던 시대는 지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워도 눈치채지 못하는 시대가 온다. 십대들에게 한 번 ‘멋진 것’이 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쥴’이든 뭐든 우리 아이들의 ‘핵인싸’가 되지 않도록 정부, 학부모, 선생님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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