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타임캡슐 열었더니… “제 꿈이 이거였군요”

입력
2019.05.19 14:43
수정
2019.05.19 20:4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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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타임캡슐 개봉식

17일 오전 담양군 전남교육연수원 2층 충의각에서 20년전 영ㆍ호남 학생들의 꿈과 우정을 담은 타임캡슐 개봉식을 앞두고 장석웅(왼쪽 두번째) 전남교육감과 경남대표 심주은(왼쪽)씨, 김상권 경남도 학교정책 국장과 최현일(오른쪽) 전남대표가 참여해 기념촬영을 벌이고 있다. 전남교육청 제공
17일 오전 담양군 전남교육연수원 2층 충의각에서 20년전 영ㆍ호남 학생들의 꿈과 우정을 담은 타임캡슐 개봉식을 앞두고 장석웅(왼쪽 두번째) 전남교육감과 경남대표 심주은(왼쪽)씨, 김상권 경남도 학교정책 국장과 최현일(오른쪽) 전남대표가 참여해 기념촬영을 벌이고 있다. 전남교육청 제공

“저는 수학을 좋아했네요. 청소년 시절 친구들이 저의 도움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이 꿈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17일 오후 20년 전 전남 영광 법성포초등학교 6학년이자 총학생회장으로 타임캡슐에 참여했던 최현일(32ㆍ목포용해초) 교사는 당시 ‘꿈과 우정의 약속카드’에 적은 꿈(의사)과는 달리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 교사는 당시 약속카드의 ‘20년 후 나의 모습’에서“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보람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썼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 교사의 ‘20년 성장 스토리’는 영상 다큐로 만들어져 타임캡슐 행사장에서 상영됐고, 잔잔한 감동을 줬다.

이날 오후 2시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재 전남도교육연수원에서는 ‘영ㆍ호남 꿈과 우정의 약속’ 타임캡슐 개봉식이 열렸다. 같은 시각 경남 의령 경남학생교육원에서도 20년 전 함께 묻었던 타임캡슐이 열렸다.

이날 개봉된 약속카드는 1999년 5월 26일 전남과 경남의 초등학교 어린이회장 1,072명(전남 559명ㆍ경남 513명)의 사연이다. 이들은 카드에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혈액형, 자기소개, 장래희망, 20년 후의 나의 모습, 경남(전남) 친구에게 바라는 글 등을 B5 크기 용지에 작성한 뒤 코팅했다.

전남교육청과 경남교육청은 이 카드를 타임캡슐에 봉인해 전남교육연수원과 경남학생교육원(당시 경남덕유교육원 의령분원) 앞마당에 각각 묻었고, 20년 만인 이날 개봉한 것이다.

20년 만에 빛을 본 559장의 약속카드에는 새천년을 앞둔 전남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당시 최 교사처럼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 많은 아이들은 대통령, 축구선수, 아나운서, 과학자, 교사, 대학교수, 법관, 검사, 디자이너, 가수 등 다양한 직업군이다. 여기에다 “119구조대원이 되어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고 싶다”는 어린이, “UN사무총장이 되어 전쟁과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이끌어가고 싶다”는 당찬 꿈을 가진 아이도 있었다.

17일 오후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전남도교육연수원앞마당에서 20년 전에 묻은 타임캡슐을 꺼내고 있다.
17일 오후 전남 담양군 가사문학면 전남도교육연수원앞마당에서 20년 전에 묻은 타임캡슐을 꺼내고 있다.

더욱이 경남 친구에게 바라는 소망으로 “얼굴도 모르지만 사이 좋게 잘 지내자” “어른들이 말하는 지역감정을 우리는 갖지 말자” “이웃처럼 친하게 지내자” 등의 메시지를 담아 영ㆍ호남 화합과 우정을 다짐했다.

이날 전남교육청 개봉행사에는 장석웅 전남교육감과 경남도교육청 김상권 학교정책국장 등타임캡슐의 주인공 50여명(전남 44명, 경남 1명과 가족 등)이 참석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과 비교했다. 이들은 30대 초반의 성인이 되어 각계 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봉식에는 당시 주인공인 전남대표 최 교사와 경남대표 심주은씨가 20년 전 만들었던 약속카드를 낭독했고, 또 다른 주인공들은 지난 20년 간 살아온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줘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날 담양고서중 세로토닌 드림클럽의 타임캡슐 개봉 축하 공연과 광양제철남초등학교과 진주 주약초등학교 합창단이 ‘하나라는 아름다운 느낌’, ‘화개장터’ 등의 노래로 영ㆍ호남 화합 합창곡을 불러 분위기를 돋웠다.

현재 결혼해서 광주에서 사는 심씨는 “당시 교사와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그가 그 동안 자신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며“이번 개봉식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존재도 다시 알고 현재 일하는 벤처기업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겠다”고 즐거워했다.

20년전 영ㆍ호남 학생들의 꿈과 우정을 담은 타임캡슐 개봉식을 앞두고 양 기관이 기념촬영을 벌이고 있다.
20년전 영ㆍ호남 학생들의 꿈과 우정을 담은 타임캡슐 개봉식을 앞두고 양 기관이 기념촬영을 벌이고 있다.

장 전남교육감도 “5ㆍ18민주화운동 39주기를 하루 앞둔 날 전남과 경남의 청년들이 모여 20년 전 약속인 타임캡슐을 개봉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들 젊은이들처럼 상생과 협력으로, 하나의 길을 향해 함께 손잡고 나갈 때 대한민국 발전과 민주주의도 꽃 피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정책국장도“20년의 이들의 우정이, 영호남 화합을 넘어 대한민국의 화합으로 이어지는 발판이다”며 “앞으로도 영호남의 교육교류는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남교육청은 이날 개봉한 타임캡슐과 약속카드를 전남과학교육원에 임시 보관한 뒤 앞으로 설립예정인 전남교육박물관(가칭)으로 이관할 계획이며, 표지석은 전남교육연수원에 보관키로 했다.

담양=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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