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사색] ‘친문독재’ 만만세?

입력
2019.05.20 04:40
30면

 독재세력, 언어파괴 통한 현실 조작 경향 

 문재인 정부, 한계 있지만 민주주의 전진 

 친문독재라는 황교안의 언어파괴 우려돼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류효진기자

“태초에 말이 있었으니”. 요한복음의 첫 구절이다. 이 문장은 인류에게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언어가 있기에 우리는 소통할 수 있고 불편 없이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문명을 축적해 올 수 있었다. 언어의 중요성은 그 나라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을 여행해보면 실감할 수 있다.

언어의 중요성 때문에 정치권력, 특히 반민주적 정치권력은 언어를 입맛에 맞게 조작하고 통제하려고 노력해 왔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이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당의 슬로건은 세가지다. “전쟁이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가 힘이다.” 나아가 정부는 사람들의 사고를 통제하기 위해 사전에서 단어들을 대폭 삭제한다. 전쟁이 평화라고? 사회적 약속인 언어의 파괴를 통해 우리의 사고를 전복시키고 통제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정치사도 독재세력에 의한 언어파괴를 잘 증언해주고 있다. 전두환이 대표적인 예다. 광주에서 유례없는 피의 학살을 자행하는 등 이 땅의 민주주의와 정의란 정의는 다 짓밟아 놓고 만든 당이 바로 ‘민주정의당’이다. 피의 학살이 ‘민주정의’라고? 비극을 넘어 희극이다. 이승만이 자유란 자유는 다 짓밟고 만든 것이 ‘자유당’이었고 박정희가 쿠테타를 통해 민주공화정을 군화발로 들러 엎고 세운 것이 ‘민주공화당’이다. 이 같은 언어파괴는 민주화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2000년 중반인가 자유한국당의 전신이자 자유당에서 민주정의당으로 이어지는 ‘극우독재세력’의 적자라고 볼 수 있는 한나라당 회의실에 어느 날 갑자기 두 구호가 큰 글씨의 슬로건으로 나타났다. ‘인권’과 ‘반핵’이다. 물론 이는 북한의 인권과 북핵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안보라는 이름아래 인권유린을 밥 먹듯이 했던 군사독재의 적자세력이자 반핵운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들이 과거 자신들이 자행한 인권유린과 ‘친핵’행적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없이 인권과 반핵을 들고 나온 것은 충격적인 ‘언어파괴’ 행위였다.

우리가 정치세력, 특히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정치세력에 의한 언어파괴에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황교안 대표 등 자유한국당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우려스러운 행적 때문이다. 황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정의당,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등과 손잡고 국회선진화법에 의한 선거법 개정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려는 것 등을 독재로 규정하고 전국 순회 장외투쟁에 나서며 촛불은 “독재를 위한 촛불”이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며 문재인 정부의 “친문독재”, “좌익독재에 맞서 저를 하얗게 불태우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글로벌한 기준으로 볼 때, ‘중도보수’내지 ‘중도’에 가까운 문재인 정부를 좌익이라고 부르는 것은 좌익을 ‘모독’하는 언어파괴행위다. 중도보수인 문재인 정부가 좌익으로 보인다는 것은 거꾸로 황 대표와 한국당이 얼마나 극우세력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긴 히틀러 눈에는 무솔리니도 좌익으로 보일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많은 시간을 독재정권하에서 민주인사를 잡아넣는 공안검사로 살았고 ‘독재행각’으로 국민에 의해 쫓겨난 박근혜 밑에서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등 오른 팔로 활동해온 그가 촛불에 의해 탄생했고 한계는 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의해 파괴된 민주주의를 복원시키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고 ‘좌익독재’, ‘친문독재’ 운운하며 언어파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 주도로 국회가 통과시킨 국회선진화법을 따르는 것이 독재인가? 황 대표는 “국민 60%가 반대하는 탈원전 정책을 막무가내로 추진해서 독재정부”라고 설명했다는데 개별 정책에서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펴는 정부가 독재정부라면 이 세상 모든 정부는 독재정부다! 정치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할 기발한 민주주의론이다. 황 대표에 따르면, “평화는 전쟁”이고 “민주주의는 독재”다. 친문독재, 좌익독재 만만세다! 민주투사, ‘석학’ 정치학자 황교안 만만세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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