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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속영장 기각에 인신공격, 신상털기 
헌국일보 자료사진

이번에도 어김없다. 17일 네티즌들은 가수 승리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신종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상진아재’ 유튜버 김상진씨를 적부심에서 석방한 정승연 서울중앙지법 판사 신상을 탈탈 털고 있다.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법원 판단이 마음에 안 들면 “판사 죽어라” “판사 돈 받았냐” “정치인 사주 받았냐” “너네 가족이 당해도 그렇게 선고할래” 같은 막말을 쏟아낸다. 한걸음 더 나가 정치적으로 덧칠해서 왜곡하고, 판사뿐 아니라 가족 문제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판사들은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법농단 수사 이후 이 같은 현상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법원에 대한 장기적 신뢰회복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판사 죽어라” “판사 돈 받았냐”… 쏟아내는 막말 

판사 신상털이의 1차 타깃은 영장전담 판사들이다. 의혹이 제기된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언론이 이를 앞다퉈 보도하면서 사실상 유죄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반발한다. 승리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신 부장판사가 대표적 예다. 영장 기각 다음날, 바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신 부장판사 해임건의가 올라오더니 동의자수는 곧 6만명을 넘어섰다. 앞서 3월엔 박정길 서울동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정권의 나팔수’란 모욕적인 조롱에 시달렸다. 박 부장판사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수사받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구속 이외에 주요 판결이나 결정도 마찬가지다.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실형을 선고, 법정구속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는 선고 하루 뒤 쏟아지는 비난과 협박에 못 이겨 신변보호를 요청해야 했다. 김상진씨를 석방해 신상이 털린 정 판사는 3명의 판사가 함께 결정을 내리는 합의부의 배석판사일 뿐인데도 표적이 됐다. 시어머니가 김을동 전 새누리당 의원이라서다. 남편이 배우 송일국이어서 세 쌍둥이까지 알려져 있다는 이유로 “세 쌍둥이가 당해봐야 정신차리겠냐” 같은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

 ◇판사들 “공정한 판결 해칠 수 있는 수준이다” 

신상털이와 협박 발언 등이 넘쳐나면서 판사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판사 개인, 혹은 가족의 신변 문제를 거론하거나 유불리에 따라 무조건 정치적 편가르기로만 몰아가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그냥 웃어넘길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내 판결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비판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판사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과도한 비난이나 정치적 해석을 쏟아내면 무척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서는 기각이 곧 무죄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구속영장 발부나 기각은 도덕적 잘잘못을 가리거나 유무죄를 따지는 게 아니라 법리적으로 구속의 필요성이 있는 지만 판단하는 것”이라며 “기각된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게 아닌데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상 필요성 등을 감안해 굳이 붙잡아둘 필요성이 없으면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게 하는 게 원칙이란 얘기다. 판사들은 특히 정치권 등이 앞장서서 판사의 신상을 공개하고 왈가왈부하는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문 공개 확대 등 신뢰 쌓을 방법 찾아야 

판사들 사이에선 대법원장이라도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수도권 지역의 한 판사는 “실제 위해가 없어도 정치권 등 여러 곳에서 법원 판결의 공정성을 지적하고 나서는 마당에 대법원장이라도 나서서 엄중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이 문제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행정처 차원에서 대책을 논의 중이나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법부 불신을 허물 장기적 방안이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법률사무소 명현의 김남국 변호사는 “도 넘은 비판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법원도 주요 결정이나 판결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방법 중 하나가 판결문 공개 확대다. 공개해버리면 억측이 생길 이유가 없다. 현재 대법원은 확정 판결문만 공개하고 있으며, 비공개 판결문을 보려면 4대뿐인 대법원 열람실 컴퓨터를 2주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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