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39년 전, 5월 18일을 기억하며

입력
2019.05.18 04:40
27면
1980년 5월의 광주. 한국일보 자료 사진
1980년 5월의 광주. 한국일보 자료 사진

39년 전인 1980년 5월은 첫날부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 ‘80년의 봄’은 5월 27일 남쪽 빛고을에서 멈췄다.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은 후 학과 조교 2년 차를 맞이한 나로서 1980년 5월 18일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이날 아침 8시 이후 교문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신군부에 의해 단행된 5월 17일 24시, 전국 계엄령 선포에 따라 18일 오전 8시에 공무원 신분의 조교인 나는 출근을 하러 학교로 갔다. 교문 앞에 군대 장갑차가 있었으며,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 하에 줄을 서서 일일이 신원조회를 한 후 교문 안에 들어가야 했다. 아주 긴 줄을 서 있는데 교문 가까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님 한 분이 새파란 군인 두 명으로부터 차마 들을 수 없는 욕설을 듣고 계셨다. 참다못해 나를 포함한 젊은 조교들 셋이 뛰어가 교수님을 보호하려다가 셋이 모두 군홧발로, 총 개머리판으로 수차례 폭행당한 기억이 난다. 그때의 분노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1980년 5월 10일, 23개 대학 대표로 구성된 전국 총학생 회장단은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 등을 담은 결의문을 포고하였고, 5월 13일부터 거리시위를 시작했다. 5월 15일 서울역 앞 집회는 그 절정을 이뤘다. 조교인 나는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5월 15일 비가 뿌려지는 가운데, 서울대 정문에서 여의도를 지나 서울역까지 걸어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에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은 북한이 남한을 침략할 조짐을 보인다는 핑계로 5월 17일 24시, 전국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앞표지에 ‘Campus life’가 인쇄되고 ‘연세대학교’가 금박으로 압인된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연세대 여학생 일기 노트에는 광주에서 일어난 아비규환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이 여학생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대학교가 휴교 조처되자, 5월 19일 오후 2시 고향인 광주로 돌아가 18일부터 28일까지 5ㆍ18민주화운동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이러한 숱한 5ㆍ18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들은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여학생은 19일 광주 집으로 온 후 부모님으로부터 18일 광주 상황에 대해 듣고 ‘지금부터 쓰는 말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엄마와 아빠께서 직접 보시고 얘기한 말들이므로 난 믿을 수 있다.’에 이어 ‘가택 수사로 방안, 창고, 옷장, 마루 밑을 뒤지고 학생들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오빠와 나도 공포심에 집안에 꼭 틀어박혀 있어야만 했다’고 기록했다. 20일에는 ‘여기 옥상에서 본(중앙로 로터리)’ 군인들의 모습, 21일에는 ‘중앙로에 나가보고 금남로 한국은행 앞까지 둘러보니 온통 시내는 전쟁의 폐허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계엄군에 의해 종결된 27일자 일기에는 ‘A.M. 3:00 …계엄군은 광주 시민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도청에 나오셔서 광주 학생들을 살리십시오. …호소하듯 울부짖는 그 소리는 정말 처절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A.M. 6:30 이제는 그 음성도 끊겼다’고 마지막을 남겼다.

전두환이 5월 21일 점심시간 전후로 K-57 광주 제1 전투비행단에 온 이후 사살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에 대한 미군 정보요원 출신인 김용장 씨의 증언이나, 광주시민들 틈에 들어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선동해서 계엄군의 강경 진압의 명분을 만들어 준 이른바 '편의대'로 불리는 특수부대원에 관한 505보안부대 수사관인 허장환 씨의 증언 등 앞으로 담대한 증언을 해 줄 많은 분들이 나와서 그 동안 참고, 참아낸 응어리진 분노를 씻어줄 공의와 정의의 심판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제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에 서 있을, 일기를 쓴 연세대 여학생의 모습도 보고 싶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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