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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캅스’ 스틸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럴 거면 경찰 왜 하셨어요?” 영화 ‘걸캅스’에서 배우 이성경이 연기하는 강력반 형사 조지혜의 대사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의 범인을 잡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실적이 되는 큰 사건을 따라가려는 동료 남자 경찰들을 앞에 두고, 조지혜는 말을 이어간다. “내 편은 있는데, 힘이 없어. 그럴 때 찾는 게 당신들 아니야.” 그런 당신들은 바로 경찰이고, 법이다. 하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무심한 반응을 보인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물이 올라오는 사이트는 수만 개이고,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사건은 다른 사건에 밀려 하염없이 대기 중이다. 당장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간다고 말해도, 한 여성의 육체와 인격과 영혼을 말려 죽일 수 있는 범죄 시도가 겨우 ‘좋아요’ 버튼 몇 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해도 들을 생각이 없다. 겨우 그런 일들을 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여성의 죽음, 여성의 고통, 여성의 피해는 언제나 남자들의 그것보다 가볍게 여겨지는, 겨우 그런 일들일 뿐이다.

익숙한가? 당연하다.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걸캅스’는 마치 최근 강남의 클럽들을 둘러싼 사건들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영화 속에 옮겨놓았다. 클럽이라는 공간은 단지 약물이 유통되는 곳일 뿐 아니라 강간, 불법 촬영, 촬영물의 유통으로 이어지는 범죄의 연쇄고리의 핵심이 되는 장소다. 우리는 이미 이 공간의 상징이 된 이름을 알고 있다. 바로 버닝썬이다. 전 빅뱅의 멤버인 승리의 클럽으로 알려진 버닝썬 사건을 통해 보면 이 범죄는 성매수와 성매매, 성접대까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류스타가 직접 운영한다며 자랑했던 버닝썬에서 여성은 물건이었고, 화폐였으며, 수많은 범죄의 피해자였다. 이 범죄들 중 일부로 승리와 가까운 연예인들이 불법 촬영을 일삼아 왔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현실은 늘 영화보다 잔인해서, 폭력 사건과 한 여성 기자의 취재로 사건의 면모가 드러나기 전, 피해자들을 위해 몸으로 뛰며 수사한 경찰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 하나,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나쁜 이유는 수사를 했어야 할 경찰과 클럽 사이에 유착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이 직접 경찰을 수사한 3개월여의 수사 결과, 유착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승리와 동료 연예인들, 동업자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열두 번의 성매매 알선이 인정된 승리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이 지지부진한 결과야말로 차라리 현실이 아닌 영화이길 바라게 된다. 적어도 ‘걸캅스’에서는 포기하지 않은 여성 경찰들 덕분에 범죄자들이 일망타진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사건에서마저도 피해자들과 지켜봐 온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받아들기 어렵다. 클럽 안에서 벌어진 범죄의 추악함만 화제가 되고 이 일 때문에 벌을 받고, 죗값을 치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얻을 수 있고, 법으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특히 이러한 범죄의 연쇄에서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여성들이 어떻게 법과 경찰을 믿을 수 있을까?

다시, 이럴 거면 경찰은 왜 있는가. 왜 법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승리는 이미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창에 이런 답변을 남긴 일이 있다. “한국 법, 이래서 사랑한다.” 이 말 앞에 생략한 그의 저속한 비유가 시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과 경찰의 현재를 말해 준다.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경찰과 법원은 시민, 특히 여성 시민의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반드시 대답할 만한 수사 결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나는 한국의 법과 그 법을 집행하는 이들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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