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양심 아닌 ‘평화적 신념 병역거부’ 항소심도 유죄

입력
2019.05.16 18:06
수정
2019.05.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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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진정한 양심으로 보이지 않는다”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오경택씨가 16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병역법 위반 항소심 선고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오경택씨가 16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병역법 위반 항소심 선고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교적 이유가 아닌 평화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2부(부장 최규현)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은 오경택(31)씨의 항소를 16일 기각했다. 오씨는 지난해 2월 군 입대를 앞두고 ‘폭력을 확대ㆍ재생산하는 군대에 입영할 수 없다’는 신념을 주장하며 병역 거부를 선택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서 말하는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며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어선 안 된다“고 양심을 정의했다. 이어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은 목적, 동기,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전쟁이나 물리력의 행사도 정당화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피고인 스스로도 이에 가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기각 이유를 밝혔다. 오씨가 2015년 민주노총 집회에 참가해 질서유지업무를 수행하던 경찰관을 가방으로 내리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오씨는 재판 과정에서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든 것은 폭력행위라고 생각하는가” “일본군이 쳐들어와서 사회적 약자에게 총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할 때 이에 대항해 집총하는 것은 피고인의 양심에 반하는가” 등의 검사 질문에 “도식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침략행위가 있을 때 총을 드는 것 말고도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도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1심 재판부는 “오씨가 주장과 같은 양심을 갖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며 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려 평화적 신념에 의한 입대 거부를 인정한 판결은 아직 없다.

오씨를 변호한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잇따른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권리라고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급심 법원과 특히 검찰은 병역거부를 권리 행사가 아닌 범죄로 전제하고 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며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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