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모습만 기억해 주세요” 빙속 여제 이상화 아름다운 은퇴

입력
2019.05.16 17:06
수정
2019.05.16 20: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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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계속하려고 했지만 무릎 부상 탓 컨디션 유지 못해

“2022년 베이징올림픽서 코치나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파”

이상화가 16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회견에서 선수 생활의 소회를 밝히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화가 16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식 및 기자회견에서 선수 생활의 소회를 밝히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빙판을 떠나는 ‘빙속 여제’ 이상화(30)가 눈시울을 붉히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떨리는 마음에 미리 적어온 은퇴 소감을 애써 읽어나갔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 탓에 질주를 멈춰서야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기 때문이다.

이상화는 16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 호텔에서 은퇴식을 열고 “분에 넘치는 국민의 응원과 성원 덕분에 세계선수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신기록 보유 세 가지 목표를 다 이룰 수 있었다”며 “이후에도 국가대표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다음 도전을 이어가려 했지만 의지와 다르게 항상 무릎이 문제였다”고 밝혔다.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첫 금메달 영광을 이룬 다음 늘 무릎 부상과 싸워야 했다. 왼쪽 무릎 연골이 닳아 계속 물이 차는 증상을 겪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는 오른쪽 다리까지 하지정맥류로 고생했다. 이상화의 아버지 이우근(62)씨는 “소치 때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고 코치에게 달려가는데 다리가 휘청거리는 걸 봤다”며 “정상이 아닌 다리로 올림픽 2연패를 했구나 싶어 가슴이 미어졌다”고 돌이켜봤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선수 생활을 지속하려고 했던 이상화가 은퇴를 고민한 시점은 올해 초다. 2018~19시즌 국제대회를 통째로 건너뛴 채 재활에 매진했지만 생각보다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이상화는 3월말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막상 그만두려니 미련이 남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재활 의지를 보였지만 역시 달라진 건 없었다.

빙판을 떠나는 이상화. 연합뉴스
빙판을 떠나는 이상화. 연합뉴스

이상화는 “수술을 하면 선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재활 및 약물 치료로 자신과 싸움을 했는데,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며 “스케이트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 못한 내 자신에게 실망해서 은퇴를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국민들이 좋은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었다”며 “항상 ‘빙상 여제’라 불리웠던 최고 모습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떨리는 마음을 누그러뜨린 이상화는 차분히 선수 생활을 돌이켜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오빠 상준씨를 따라 처음 스케이트를 탔고, 휘경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4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첫 올림픽 출전은 2006년 토리노 대회다. 이상화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른 살까지 목표만을 위해 달려왔다”며 “토리노 올림픽 때 (대표팀) 막내로 빙판 위에서 정신 없이 넘어지지만 말자고 했는데, 이제 선수로나, 여자로나 꽤 많은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소치 올림픽이다. 2013년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대회에서 자신이 세 차례 세웠던 세계신기록을 36초36까지 앞당겼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압도적인 레이스에 누구도 이상화의 올림픽 2연패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이상화는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딴다’는 징크스를 두려워했다. 결과적으로 이상화에게 징크스는 통하지 않았다. 소치 대회에서 37초28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는 “징크스를 이겨내고 완벽한 레이스로 2연패를 이룬 자신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 이상화를 얘기할 때 가족의 희생을 빼놓을 수 없다. 1997년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이상화와 오빠 가운데 한 명만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화의 부모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딸이 계속 운동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했고, 오빠는 공부에 집중했다. 이상화의 가족은 아직도 그 때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 아파한다.

마지막으로 이상화는 “’저 선수도 하는데, 왜 난 못하지’, ‘안 되는 걸 되게 하자’는 생각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 선수 이상화는 사라졌으니 일반인 이상화로 돌아가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묻는 질문엔 “아직 향후 계획이 없다”며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은 방송 해설위원이나 코치로 참가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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