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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국현) 과천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 앞에 추모 행렬이 줄을 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전 세상을 떠난 세계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1932~2006)의 분향소가 ‘다다익선’ 앞에 차려지면서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이 1988년 완성한 18.5m 높이의 TV 탑으로,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가 예술과 기술을 통해 조화할 수 있다는 철학을 응축한 작품이다. 차곡차곡 쌓인 1,003대의 TV 화면에서 경복궁, 개선문 등 각국의 상징물이 빠르게 흘렀다.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사랑한 추모객 수 천 명이 ‘다다익선’ 앞에서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다다익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작품을 소유한 국현, 나아가 한국 미술계의 오랜 고민거리다. ‘다다익선’은 TV 모니터와 부품 노후화로 고장과 수리를 거듭하다 지난해 2월 누전으로 작동이 아예 멈췄다. 빛을 잃은 ‘다다익선’은 1년 3개월 째 국현 과천관 중앙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다. 국현은 올해 하반기 ‘다다익선’의 복원ㆍ보존과 관련한 전문가 심포지엄을 연다는 계획이지만, 반복돼 온 논쟁에 전문가들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상태다. 복원ㆍ보존 방법론을 놓고 의견이 워낙 첨예하게 갈려 결론을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백남준은 생전에 작품 외형을 신기술 매체로 대체해는 데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개념은 영상에 담겨 있기 때문에, 영상을 전달하는 매체인 작품 외형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2002년 ‘다다익선’이 대대적 수리를 받는 과정에서 브라운관이 검은색에서 은색으로 바뀌었을 때도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다익선’ 보존ㆍ복원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다다익선’ 사례가 두고두고 전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남긴 다른 작품뿐 아니라, 국ㆍ내외 ‘백남준 후예’들이 구축해 온 미디어아트 역사와 보존 이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최대 쟁점은 ‘다다익선’의 원형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보존ㆍ복원할 것인지다. 원본 브라운관과 유사한 모델을 제작하는 것이 원형 복원에 가장 가깝지만, 모니터가 또 다시 노후화될 것을 감안하면 비현실적 방안이라는 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브라운관 모니터를 LCD, LED, OLED 등으로 바꾸는 방법 △TV 케이스는 그대로 두고 내부 브라운관을 평면 모니터로 바꾸는 방법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상징하는 작품인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모니터 노후화에 따른 작동 문제와 브라운관 텔레비전 생산중단으로 지난해 2월부터 가동 중단됐다. 연합뉴스

작품을 해체하자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다다익선’의 영구 설치가 국현의 애초 목표는 아니었고, 복원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국현은 2012년 같은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면서 구조물을 해체하고 관련 기록물을 보존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미술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론을 내지 못했고, 이후로 7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국현은 이번 심포지엄을 ‘열린 형태’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국현 안’을 내고 이를 중심으로 논의를 모으는 대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 같은 방식에 회의적이다. 백남준의 전속 테크니션으로 ‘다다익선’을 설치한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는 “모니터와 부품 노후화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고, 복원 관련한 논의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여년이 흐른 상황”이라며 “또 다시 원점에서 의견을 듣는 방식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관계부처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현 과천관은 오는 11월 국내 비디오아트 역사를 되짚는 전시인 ‘한국 비디오아트 6999’를 연다. 김구림, 박현기 등 작가들을 조명하지만, 정작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은 이 때까지도 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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