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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52시간發 후유증에 속타는 기업들]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 불구 신작 출시 지연, 영업이익 급감 
 속도전이 성패 가르는 IT업체도 야근 불허에 제품 검수 지연 
게티이미지뱅크

15일로 예정됐던 전국 버스 파업 사태는 간신히 봉합됐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혼선과 부작용은 산업 현장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정해진 기간 동안 높은 집중력으로 빠르게 기술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정보기술(IT) 업계는 이른바 ‘속도전’이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인데, 지난해 7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때부터 지속적으로 IT 업계가 요구했던 근로 시간 정산 단위 확대가 10개월 넘게 제자리 걸음이어서 기업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현재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법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한 특정 기간을 고려해 사전에 근무표를 짜고 정산기간 최대 3개월 내 평균을 주 52시간으로 맞추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사후에 근로 시간을 정산하되 1개월 단위로 평균 주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이 있다. 그런데 탄력근로제 정산기간을 최장 6개월로 연장하는 법안은 여야 의견차로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때문에 관련 기업들의 경쟁력이 근무 시간 제한에 갇혀 추락하는 사례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게임 산업이다. 통상 게임 출시 직전 최소 3~4개월은 집중적으로 업무가 몰리기 때문에 게임 업체들은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자로 재듯 끊어 운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형 게임업체들은 프로젝트당 투입 인력을 늘려 업무 공백을 메우고 있지만, 올해 실적에서 이미 간접적 타격이 드러나고 있다.

1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1분기 영업이익(795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61% 감소했고, 넷마블도 54.3% 줄어든 339억원에 그쳤다. 넥슨은 9,489억원의 분기 최대 매출을 달성했지만 영업이익(5,367억원)은 3.9% 감소했다. 그나마 선방한 넥슨을 제외한 넷마블과 엔씨소프트의 공통점은 ‘신작 게임 실종’이다.

게임사 빅3 실적 . 그래픽=송정근 기자

수백억 원씩 투입되는 대작의 경우 개발, 출시 등 굵직한 일정을 미리 세우기 때문에 탄력근로제로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긴 하지만 수개월씩 집중 준비 기간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에는 3개월이란 정산기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이런 탄력근로제로도 대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트래픽 폭주, 시스템 오류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은 IT 업계에서는 근로시간을 사후정산하는 선택근로제를 훨씬 선호하지만 현행 1개월인 정산기간 확대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넷마블 엔씨 등이 선택근로제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실적 하락을 피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 달이라는 단위에 게임 개발 일정을 딱딱 맞추는 게 쉽지 않다”며 “게임 개발에는 다양한 팀이 매달리고 이 중에서도 전문 분야가 각각 나눠져 있기 때문에 어떤 직원의 근무 시간이 초과했을 때 다른 사람을 교체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개발에 투입되는 시간과 인력이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특히 모바일 게임은 수명이 짧아 빠른 개발과 출시가 이어져야 하는데 52시간 근무제로 게임 출시 시기가 늦어지면서 실적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게임사 출신 A(31)씨는 “게임은 개발 단계에서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굴러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개발 단계에서는 찾지 못했던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고, 시간대별 이용자 규모 예측이 어려워 서버 증설 등 업데이트를 수시로 해 줘야 하는데 이 작업을 24시간 하는 과정에서 변수가 너무 많아 주 단위나 월 단위로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월 IT서비스산업협회가 중형 규모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발단계 3개월 간 평균 초과근무 시간은 17.9시간이었고, 막바지 테스트 한 달 동안에는 66.1시간이나 초과했다. 최소 3~4개월 이상 집중근무가 불가피한 것이다.

삼성SDS, LG CNS 등 그룹 계열사의 IT 시스템을 담당하는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은 1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긴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첨단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검수 등의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한다. 특히 출시 일정이 임박한 상태에서 과거와 달리 야근을 하지 못해 부득이 출시를 연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5G 통신 상용화 일정에 맞춰 제품을 출시하려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당초 약속한 개통일을 앞두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며 검수 작업을 하느라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졌다.

IT 업체 관계자는 “예측 불가능성, 프로젝트 진행에 따른 집중근무 불가피 등 IT 업무 특성을 감안해 탄력근로제뿐 아니라 선택근로제 정산 기간을 6개월이나 1년으로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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