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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가진 정부의 모순된 피해 의식
대통령과 언론의 역학 관계는 일방적
디지털시대 권력 영향력은 더 강해져
2017년 1월 18일(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재임 중 마지막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굿럭”이라고 인사를 한 뒤 손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에 처음 전용 기자실을 만든 것은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 대통령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기자들은 의사당에서 백악관을 취재차 다녀가곤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자들이 자신을 전담해 취재하기를 원했다. 대통령과 기자단 간 줄다리기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됐다. 언론사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언론을 체계적으로 관리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혹은 스핀(spin), 그러니까 정계에서 뉴스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하는 행위의 원조로 꼽힌다.

그 후로 백 년이 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언론 간 역학관계의 역사는 일방적이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 대통령 사임과 같은 예외적인 사례 때문에 언론의 힘이 센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그건 착시다. 미국에서도 실제론 언론이 눌리거나 이용당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언론은 의원이나 선출직 공직자에게 강한 면을 보일 때가 있어도, 국가수반인 대통령에게는 무척 약하다. 그건 대통령이 가진 것들, 즉 막대한 정보력과 그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힘, 인적ᆞ물적 자원과 여론의 지지 기반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부드러운 말과 커다란 막대기가 있으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you will go far)”는 등의 말로 뉴스를 만들고, 자신을 세계적인 지도자로 각인했다. 한편으론 안티트러스트법(반독점법)을 홍보해 민중편에서 금융자본과 싸우는 호민관의 이미지를 심었다. 원하는 보도를 위해 그는 기자와 독대하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기자의 자부심을 북돋워 자기 편을 만들되, 원하는 대로 기사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부르지 않았다. 요즘도 쓰이는 방법이다.

디지털 시대에 대통령의 소통력은 더 강해지고, 기자들의 수단은 더 줄어들었다. 오바마는 기자회견을 회피하는 대통령이면서 외교적인 실수는 자주 했다. 첫 아시아 순방 때 일본 히로히토 천황에게 90도로 절을 하는 실수를 저질러 ‘바우게이트 (Bow-gate)’ 파문을 일으켰다.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는 아사드 대통령을 겨냥해 섣불리 레드라인을 선언했다가 지키지 못해 위신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마다 오바마를 변호하고 지킴이로 나서는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뉴스를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기사로 다루지 않고, 중립을 가장해 여야 간의 공방 기사로 탈바꿈시켰다. 이 또한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이런 우호세력 기자들을 어떻게 여길까? 오바마 백악관의 실세로 불리던 벤저민 로즈 국가안보부보좌관이 임기 말 뉴욕타임스 매거진과의 회견에서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 뉴스를 놓고 자기가 관리하는 학자와 기자들에게 원하는 시각을 전파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면서 어떤 기자들은 배경 지식이 없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 대로 쓰고, 어떤 기자들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울림통이라고 불렀다. 중견 기자 이름을 적시해 “무엇이든 퍼뜨려 주는 나의 ‘RSS feed’”라고 부르기도 했다. 로즈 부보좌관은 스스로 “일을 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오바마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모르게 된다”고 고백한 오바마의 분신이다.

언론 자유의 고전적 원형은 정부로부터의 자유다. 정부는 원하면 정보 흐름을 압도하고 반대 의견을 침묵시킬 수단과 자원이 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힘이다. 정부는 그런 힘을 이용해 정보를 독점하고 비판을 억누르겠다는 유혹에 빠진다. 언론은 개인과 집단에 피해를 줄 때가 있다. 하지만 정부와의 관계에서만큼은 독립적이고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프레임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성과가 있어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공연하다. 프레임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가 혼심을 다하겠다는 말에 이르러선 본말이 바뀐 느낌이다. 프레임을 가장 강력하게 밀어부칠 수 있는 건 정부이기 때문이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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