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금지 무시 피랍자에 프랑스ㆍ한국 국민 비난 쇄도

입력
2019.05.12 18:20
수정
2019.05.12 23:55
2면

구출작전 중 弗 특수부대원 2명 희생… 선진국, 일탈 불구 국민안전 우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일 파리 근교 군 비행장 활주로에서 납치됐다 구출된 한국인 여성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다. A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일 파리 근교 군 비행장 활주로에서 납치됐다 구출된 한국인 여성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다. AP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오후 6시쯤 프랑스 파리 근교의 군 비행장 활주로에 서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무장세력에게 피랍됐다 구출된 자국민 2명과 한국인 1명을 맞이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지만 그는 무표정이었다. 현장에선 의례적인 화환 증정식도 없었다.

트위터 등에선 “감옥에 보내야 한다”거나 “벌금형에 처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정부가 테러 위험을 감안해 여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는데도 무시했고, 더욱이 구출 과정에서 최정예 특수부대원 2명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구출된 이들이 전사한 장병들에게 애도를 표했다는 기사엔 “그 입 다물라”는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

앞서 프랑스 군은 9~10일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에게 납치된 자국민 2명 구출 작전을 통해 한국인과 미국인 각 1명을 포함한 인질 4명을 구출했다. 작전 도중 인질들의 안전을 위해 무장세력에 맨몸으로 맞서다 2명이 숨졌다. 프랑스인 인질들은 지난 1일 아프리카 베넹공화국 북서쪽 펜드자리 국립공원에서 피랍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지만, 테러집단의 출몰이 잦은 부르키나파소와 인접한 여행금지구역이었는데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은 단 2명을 구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오지에까지 특수부대를 파견한 데 대해 “국가의 의무는 국민이 어디에 있든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이어 “군인 2명이 숨졌다”면서 “정부의 여행 관련 권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한국인 등 4명의 인질을 구출하다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전사한 세드리크 드 피에르퐁(왼쪽) 상사와 알랭 베르통셀로 상사. EPA 연합뉴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한국인 등 4명의 인질을 구출하다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전사한 세드리크 드 피에르퐁(왼쪽) 상사와 알랭 베르통셀로 상사. EPA 연합뉴스

그래서 정부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지역에 갔다가 사고 당한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가 국제사화의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아직 대다수 국가는 위험 경고를 무시했다가 납치ㆍ억류되더라도 결국은 이들의 안전을 우선시한다. 테러조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암묵적인 원칙이 있지만 협상 지원 등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우리 정부도 2007년 경고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탈레반에 붙잡힌 이들의 석방을 위해 직접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2017년 보고서에서 “프랑스ㆍ이탈리아ㆍ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도 테러조직에 몸값을 지불했다는 의혹을 부인하지만 최근 이들 나라 인질의 석방 사례가 많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납치ㆍ억류된 국민의 안전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14년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붙잡혔던 20대 일본 남성이, 일본 정부가 이라크 내 자위대 철군을 끝내 거부한 직후 참수당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우려해 미일동맹 강화에 몰두했고 이를 위해 비판여론을 무릅쓴 채 파병을 강행했었다. 간첩혐의 등으로 이란에 억류됐던 미국인 4명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체결하고 채무상환 명목으로 4억달러를 지급한 직후 무사히 고향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테러조직에 참여한 경우엔 무관용 원칙이 확고하다. 미국은 지난 2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했다가 이를 후회하고 18개월 된 아들과 함께 귀국을 희망한 호다 무타나의 입국을 거부했다.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IS에 가담했다가 포로가 된 자국민을 데려가지 않으면 이들을 곧바로 석방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정작 무슬림 자국민은 외면한 것이다.

영국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가 IS 조직원과 결혼한 ‘IS 신부’ 샤미마 베굼의 귀환 요청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베굼의 아기가 시리아 난민촌에서 생후 3주만에 숨진 뒤 비인도주의적인 처사라는 비난이 거셌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한편 외교부는 한국여성 A씨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며 빠른 시일 내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프랑스 군병원 측은 11일(현지시간) A씨에 대해 기본 건강검진을 한 결과 건강상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진단했다”며 “심리치료 및 경과를 지켜본 후 퇴원조치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A씨는 공항에서 한국 내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마쳤고 건강상 이상징후가 추가 확인되지 않는 한 조속히 귀국할 예정이다. 최종문 주프랑스 대사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감사 및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사의를 표하며 양국이 지속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강화하자고 언급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A씨는 여행경보 4단계 중 2단계인 ‘여행자제’ 지역으로 설정된 부르키나파소 남부 국경 인근에서 피랍된 것으로 추정돼, 외교부는 해당 지역의 여행경보 상향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위험한 지역에 왜 들어갔는지를 놓고 A씨에 대한 비난도 나오고 있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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