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어린이처럼] 가장 받고 싶은 상

입력
2019.05.10 04:40
29면

어린이가 쓴 이 글이 화제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2016년 전북교육청이 주최한 어린이글 공모전에서 동시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이 작품이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지고, 에세이집에도 수록됐다 한다. 평론가 눈으로, ‘문학성’을 잣대로 따진다면 이 코너에 소개할 수 없는 글이다. 하지만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이의 마음만큼은 낯익고 평범한 표현 사이를 끝내 비집고 나와 우리에게 다가온다. 어버이날 즈음하면 더 그리울,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다시 눈물고이는 독자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다른 어린이의 글도 있다. “우리 엄마는 예쁘다/나는 오빠 전화기로 엄마를 본다/나는 우리 엄마를/실제로 보고 싶다./멀리 있기 때문이다.”(장수빈 어린이 시, ‘우리 엄마’, ‘동시yo’ 2018 가을호)

이 글은 좀 더 ‘문학적’이다. “우리 엄마는 예쁘다”는, 어떤 군더더기 없이 단호한 첫 문장이 언뜻 당황스럽지만 엄마에 대한 어린이의 확고한 감정에 우선 수긍한다. 그런 채 읽는 두 번째 행에선 어린이에게 특별한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어린이는 엄마를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만난다. 그마저 오빠의 전화기로만 볼 수 있다. 전화기가 없거나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마저 수시로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 아픔을 더한다. ‘실제로’라는 단어는 사실 관계를 따지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듯 슬픈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니. 새로운 언어가 발견된다. 어린이가 짧은 5행을 시로 만들려고 애써 구상하고 다듬고 배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현실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로한 일갈이 결과적으로 ‘문학성’을 지닌 시가 됐다.

대개 어린이가 쓴 시는 ‘어린이시’, 어른 시인이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쓴 시는 ‘동시’로 용어를 구분한다. 그리고 오직 ‘동시’만 ‘(아동)문학’의 범주에 넣는다. 어린이가 쓴 시가 감히 ‘문학’이 될 수 없고, 등단으로 인정받고 숙련된 어른 작가만이 ‘문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로 당연히 구분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근대 문학의 종언이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고, 문학 엘리트주의를 반성하며 작가와 독자의 분리를 허물고 수용자 중심의 예술이 모색되는 지금, ‘어린이시’와 ‘동시’의 관계도 다시 보게 된다. 과연 이 시대 ‘문학’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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