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까다로운 LP, ‘힙한 문화’로 등극

입력
2019.05.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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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레코드판(LP)은 과거의 향수를 끄집어 내는 복고(레트로)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과거 LP를 들어본 40, 50대가 주로 옛 생각을 떠올리며 LP를 수집했다.

그런데 최근 LP의 주 소비층이 바뀌고 있다. 오마이걸, 박봄, 슈퍼주니어의 려욱, 아이유, 하현우 등 요즘 가수들이 잇따라 음반을 LP로 내놓으면서 LP가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힙한 문화’로 부상했다. 오마이걸은 1집 음반을 LP로 내놓았고 박봄은 ‘블루로즈’ 음반을, 려욱은 ‘너에게 취해’라는 미니 음반을 각각 LP로 출시했다. 아이유는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를, 국카스텐의 하현우는 솔로 음반 ‘이타카’를 한정판 LP로 선보였다.

LP는 CD나 디지털 음원 파일과 달리 번거로운 저장매체다. 음반 전체 수록곡을 들으려면 재생 중간에 판을 한 번 뒤집어야 한다. 보관과 관리는 물론이고 LP를 재생하기 위한 턴테이블 및 바늘도 끊임없이 유지 보수를 해줘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 이 같은 번거로운 과정이 오히려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재미로 다가온다. LP 전문가인 최규성 한국대중문화연구소 대표는 “젊은 가수들도 LP를 발매하면 음악성 측면에서 차별화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며 “음악을 향유하는 팬들 역시 LP 앨범을 멋지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LP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CD나 MP3 등 디지털 음원 파일보다 LP의 아날로그 음질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 최 대표는 “어떤 사람은 LP의 소리가 더 깊고 울림이 좋다고 얘기하고, 어떤 사람은 디지털 음원이 세련되고 깔끔해서 좋다고 한다”며 “디지털 음원 파일의 경우 아날로그 음악을 디지털로 압축한 가공의 음이어서 아날로그 음악보다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 재생 과정도 버튼만 누르면 되는 디지털 음원 파일과 달리 LP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LP를 꺼내서 먼지를 닦고 턴테이블에 얹은 뒤 소리를 재생하는 턴테이블 톤암의 바늘을 조심스럽게 올려 놓아야 한다. LP 애호가들은 이 과정을 일종의 의식에 비유한다. 최 대표는 “LP를 닦고 꺼내서 기계에 올려놓는 과정에 정성이 들어간다”며 “쉽게 음악을 듣는 디지털 음악과 달리 LP로 음악을 들으면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비용도 LP가 더 든다. LP의 경우 음반에 따라 다르지만 2만, 3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턴테이블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소모품인 바늘도 수명이 있어서 오래 들으면 LP의 소리골이 상하지 않도록 바꿔줘야 한다. 여기에 앨범 재킷이 상하지 않도록 비닐을 따로 사서 씌우고 LP의 소리골에 먼지가 끼지 않게 수시로 닦아줘야 한다. 더러 먼지가 끼면 미지근한 물로 세척도 한다.

재생 기기인 턴테이블과 앰프도 10만원대부터 1,000만원을 넘어가는 제품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하지만 비싸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점은 LP의 역설이다. 가격이 싼 기기여도 궁합을 잘 맞춰서 관리를 잘하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LP에 깊이 빠지면 기기 교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최 대표는 “LP 재생을 위해 어떤 턴테이블과 앰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사람마다 음역 선호도 등 취향이 달라서 비싼 장비여도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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