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택연금, 은퇴자를 위한 축복

입력
2019.05.16 04:40
29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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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OECD 발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45.7%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많은 사람들에게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는데도 왜 이렇게 노인가구의 빈곤율은 높은 것일까?

공적·사적 연금 등 노후소득 보장체계가 제대로 구축되기 전에 너무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때문일 것이다. 노인 가구 자산의 80%가 현금화가 어려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것도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기초연금 확대, 노인일자리 지원 등 많은 노인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며 이것만으로 당장에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부동산 자산 중 주택을 안정적으로 현금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역(逆)모기지론인 주택연금이 있다.

주택연금은 내 집에 살면서 그 집을 담보로 평생 동안 매달 연금처럼 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대출제도이다. 정부가 사실상 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에 중단될 위험이 없다. 부부 중 한 명이 60세 이상이면서 소유하고 있는 주택이 9억원 이하이면 가입이 가능하다. 월 수령액은 주택가격 3억원 기준 70세 가입시 90만원이다. 나중에 부부 모두 돌아가신 뒤에 주택을 처분하여 정산을 하고 이 때 처분 가격이 그 동안 받은 금액보다 많으면 남은 만큼 자녀들에게 상속한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청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값이 하락하거나 오래 살게 되어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집값이 상승하면 남은 만큼 돌려주니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인 머튼도 “한국의 주택연금이 은퇴자에겐 축복”이라고 말했다. 2007년 주택연금 제도 도입 이후 가입가구 수는 6만2,000가구로 전체 이용대상 가구의 1.5%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주택금융공사에서 실시한 ‘2018년도 주택연금 수요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가구의 71.5%는 자녀에게 주택을 상속할 의향이라고 응답했으며, 주택연금 가입시 자녀와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는 응답이 33.8%라고 한다.

아직도 많은 부모님들은 적어도 집 한 채는 자녀들에게 상속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게 되는 고령화 시대에는 상속의 의미가 없어진다. 차라리 자녀들이 아이들 교육비 부담 등으로 한창 쪼들릴 때 부모님 용돈 고민이라도 덜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녀들에게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주택연금 수령으로 여유가 생겨서 며느리나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면서 노년을 보내게 된다면 더욱 보람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몇 년 전에 읽은 주택연금 체험 사례 하나가 기억난다. 은퇴 후에 매일 가는 경로당에서 친구들이 삼겹살에 막걸리 한잔하러 가자고 해도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자꾸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점차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자신감을 잃게 되더란다. 그런데 주택연금에 가입하고부터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됐고 돌아오는 주말에는 친구들과 동해안에 가서 회나 한 접시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은퇴 후 안정적인 소득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이제 자녀들에게 집을 물려주시기 위해 힘겹게 노후를 보내시는 부모님께 주택연금 가입을 권해야 할 때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만큼 지낼 수 있게 되기까지 평생을 피땀 흘리며 살아오신 이 땅의 많은 부모님들이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셨으면 좋겠다. “효도하고 싶으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子欲養而親不待)” 5월 어르신들 선물로 주택연금을 추천한다.

김성수 나사렛대 국제금융부동산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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