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벨트를 가다]커피벨트의 비밀

입력
2019.05.08 09:37

<3회>그레이프 리프트 밸리

아프리카 대륙은 두 개로 쪼개지고 있다. 정치나 종교, 이념의 얘기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대륙이 갈라지고 있다. 탄자니아,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이 있는 동쪽 아프리카 지역과 나머지 대륙이 1년에 3밀리미터씩 벌어지고 있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Great Rift Valley). 아시아 남서부 요르단에서 아프리카 동남부 모잠비크까지 뻗은 세계 최대의 협곡으로 동아프리카 지구대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골짜기다. 이 지역은 대륙의 표면을 이루는 세 개의 판이 부딪히는 곳이다. 그 중 하나인 아라비아 판은 이미 분리돼 홍해를 이루었고, 동아프리카 지역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인도판이 아프리카판에서 조금씩 오른쪽으로 떨어져가고 있다. 물론 두 개의 아프리카 대륙으로 분리되려면 영겁의 세월이 지나야겠지만.

이 협곡을 따라 거대한 산들이 2열로 길게 늘어서 있다. 두 개의 판이 동서로 이동하면서 밀려난 지각이 솟구쳐 올라 산과 고원이 됐고 갈라진 틈은 깊은 호수를 이루었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필두로 케냐, 루웬조리, 엘곤 등 4,000미터를 훌쩍 넘는 봉우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이들 산맥 사이로 많은 호수들이 붙을 듯 이어져 있다. 세계 두 번째 담수호인 빅토리아호를 비롯해 탕가니카, 니아사 등 바다처럼 넓고 깊은 호수들이 높은 고봉에서 흘러내린 물들을 담고 있다. 종래에 이 호수들이 바다가 되면서 대륙이 분리되는 것이다.

이 협곡은 지구에 두 개의 선물을 주었다. 하나는 인류이고 또 하나는 커피다. 인류와 커피 모두 협곡 주변에서 그 기원이 잉태됐다.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생산되는 아라비카 커피의 대부분은 이 계곡 주변의 고원지대에서 생산된다. 그래서 아프리카 커피를 얘기할 때 이 거대한 골짜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르가체페 가는 길. 저 멀리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반대쪽 고원지대가 보인다. 1,000만년 가량 지난 후 멀리 보이는 능선으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최상기씨 제공
이르가체페 가는 길. 저 멀리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의 반대쪽 고원지대가 보인다. 1,000만년 가량 지난 후 멀리 보이는 능선으로 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한다. 최상기씨 제공

지구는 지축이 23도가량 삐딱하게 기울어 있다. 그래서 태양은 1년에 한 번씩 적도를 중심으로 위, 아래를 오르내린다. 하지(夏至)때 북쪽으로 23도, 동지(冬至)때 남쪽으로 23도까지 갔다가 회귀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곳에 선을 그어 회귀선이라 불렀다. 지리학에서는 남, 북회귀선 사이의 띠를 열대(熱帶, Tropics)라고 부르는데 커피는 이 지역에서만 자란다. 그래서 회귀선과 커피벨트는 묘하게 일치한다.

그렇다고 커피벨트 안의 모든 지역에서 커피가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피는 생각보다 재배 조건이 복잡한 작물이다. 온화한 기온, 적당한 강수량, 비옥한 토양이 반드시 맞아야 된다.

특히 아라비카 커피는 생육환경이 좀 더 까다로워 해발 500~2,000미터 사이 고원지대에서 자란다. 고온다습 하지 않아야 하지만 서리가 내려서도 안 된다. 비가 너무 많거나 적게 내리지도 않아야 한다. 연간 1,200~2,000 밀리미터의 강우량이 필요하다. 열대의 일사량이 필요하지만 햇살이 지나치게 강해서도 안 된다. 평균 기온 섭씨 18~22도가 적당하고 25도 이상 기온이 올라가면 광합성이 어렵다. 토양은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고 배수가 잘되는 화산 토양이 적당하다.

이런 조건이 맞는 곳이 커피벨트, 다시 말해 열대의 고산 또는 구릉지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적도 주변의 리프트 밸리 구릉지역이 이에 해당되는데 대협곡을 따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 르완다, 부룬디 등에서 아라비카 커피가 재배된다. 대부분 아프리카하면 열사나 밀림을 떠올리지만 커피는 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적당한 비가 내리는 지구의 가장 온화하고 아름다운 기후 환경에서 자란다.

이르가체페 커피가 자라는 숲. 얼핏 보면 밭인지 숲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바나나 잎이 적당한 그늘막이 돼주는 곳에서 커피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최상기씨 제공
이르가체페 커피가 자라는 숲. 얼핏 보면 밭인지 숲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바나나 잎이 적당한 그늘막이 돼주는 곳에서 커피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최상기씨 제공

이른 아침 시끄러운 새 소리에 잠을 깼다. 이르가체페 커피와 만나는 날이다. 고도계는 해발 2,000미터 위로 올라가 있다. 햇살은 눈부신데 바람은 선선하다. 대기가 상쾌해서인지 고도가 높아서인지 자꾸 심호흡을 하게 된다. 더 없이 쾌적한 날씨. 천국이 있다면 그곳의 날씨가 이럴 것이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다시 흙먼지로 뒤덮인 차에 올랐다. 비포장 길을 달리던 차는 이르가체페 읍내를 지나자 평평한 길에서 벗어나 언덕길로 오른다. 산비탈을 따라 난 좁은 길을 오르내리더니 곧 빨간 커피 열매가 자라고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르가체페의 커피 체리를 만나는 순간 멀리 이 곳까지 고생스럽게 달려온 보람이 새삼스럽다. 착각일까. 달콤하고 화사한 꽃 내음마저 느껴지는 듯 하다. 커피의 귀부인을 알현하는 순간이다. 아, 이르가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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