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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네이피어 총격전의 장본인 잔 몰레나(왼쪽)와의 50시간 대치전에 출동한 군 장갑차. 위키피디아

2009년 5월 7일 오전 9시 20분, 뉴질랜드 북섬 네이피어(Napier)시 마약단속반이 51세 시민 잔 몰레나(Jan Molenaar)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몰레나는 개와 산책을 나가 집에는 동거인만 있었다. 주요 마약사범 단속이었다면 탐지견과 특수기동대 같은 전투경찰을 대동했겠지만 그들은 경찰관 3명뿐이었다. 수색영장은 발부 받았지만, 외형상 ‘들이닥친’ 것도 아니었다. 실제 그들이 찾아낸 것도 마리화나 2포기와 말린 대마 200g 남짓이 전부였다.

10분 남짓 뒤 귀가한 몰레나는 곧장 2층에서 라이플을 들고 내려와 경찰관들을 위협하며 내쫓았다. 그리고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계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몰레나는 집 바깥으로 쫓겨난 경찰관에게 총격을 가해 53세 경관을 살해하고 다른 두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부상 당한 경찰관에게 추가 총격을 가하려던 걸 이웃 주민이 몸싸움을 벌이며 저지해 목숨을 구했지만 그 이웃도 골반 등 2곳에 총상을 입었다.

기동타격대가 현장에 출동했다. 몰레나와 경찰의 대치는 9일 정오까지 50시간 넘게 이어졌고, 그 사이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 접근하는 경찰에 몰레나가 총격을 가해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부상 경관 등은 군 장갑차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구출돼 병원으로 호송됐다. 대치는 몰레나가 자살하면서 끝이 났다.

몰레나는 역도선수 출신의 근육질 몸매에 6년간 군 기갑병으로 복무한 베테랑이었고, 알려진 바 모범 시민이었다. 사태 종료 직후 몰레나의 이웃인 웨인 롤린슨(Wayne Rollinson, 당시 51세)이란 이가 지붕에 올라가, 세상이 다 보라는 듯 커다란 페인트 글씨로 ‘Legend(전설)’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롤린슨은 인터뷰에서 “그가 지금 저지른 일과는 무관하게, 그는 내게 전설이다”라고 말했다. 몰레나가 알코올 중독자였던 자기를 격려하며 음식을 챙겨주고 술을 끊도록 도왔고, 정 견디기 힘들어하면 소량의 마리화나를 주곤 했다며 “이웃들에게 몰레나는 지옥 문을 지키는 백기사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마약 때문에 동생을 잃은 몰레나는 지역 폭력단에 대해서도 극도로 혐오해, 해결사처럼 나서 주민들을 지켜주곤 했다고 알려졌다. 지역 언론은 그의 장례식이 무척 성대했다고 전했다.

그의 비이성적 분노의 원인 혹은 사연에 대해 사후 여러 가능성- 분노조절장애 징후나 제복 혐오 등-이 제기됐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진실도 묻혔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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