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성 칼럼] 표변의 나라, 가면을 벗자

입력
2019.05.05 18:00
수정
2019.05.06 00:18
22면

어제 외친 명분 버리고 정반대 주장

표변 누적되면 이 나라 미래 없어

법 도덕 기준 낮추고 엄격 적용하자

‘인사청문회는 더 가관이다. 야당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도덕군자를 기준으로 검증하려 든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을 질타하는 의원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한 야당 시절 독하게 검증했던 여당은 갑자기 관대한 도덕군자로 변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표변, 그것을 해결하려면 지키지도 못할 수준으로 법을 만들지 말고, 예수나 공자가 와도 이행하기 힘든 규범을 제시하지 말자.’ 연합뉴스
‘인사청문회는 더 가관이다. 야당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도덕군자를 기준으로 검증하려 든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을 질타하는 의원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한 야당 시절 독하게 검증했던 여당은 갑자기 관대한 도덕군자로 변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표변, 그것을 해결하려면 지키지도 못할 수준으로 법을 만들지 말고, 예수나 공자가 와도 이행하기 힘든 규범을 제시하지 말자.’ 연합뉴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변호사가 최근 사석에서 “요즘 후배 검사들은 너무 귀를 닫고 있다”고 푸념을 했다. 의뢰인의 억울한 사정을 전하면, 대부분 변명으로 생각하고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체적 사례까지 제시하는 그의 지적은 타당했다. 당연히 맞장구치며 분노해야 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열변을 토하던 그는 무척 섭섭해했다.

그래서 몇 년 전 현역 시절의 그가 했던 얘기를 복기해 주었다. 당시에도 특수부가 맡으면 반드시 구속한다, 잡아야 할 대상은 별건 수사라도 해서 구속한다, 기업 수사에서 이왕이면 오너를 잡아넣으려 한다는 등 검찰 수사의 과도함이 화제에 올랐었다. “이슈가 된 사건에서 부하 검사가 피의자 진술을 듣고 납득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그러면 ‘받아쓰기 하려고 그 어려운 고시 공부를 했느냐’고 박살내지”라고 답했었다. 과거를 상기시켜주자, 그는 “내가 그랬었나, 허허, 그땐 세상을 너무 좁게 봤지”라며 멋쩍어했다.

‘어제의 나’와 달라진 ‘오늘의 나’를 발견하고 머쓱해하면, 그나마 좋은 사람이다. 얼마 전까지 목 놓아 외쳤던 명분을 서슴없이 버리고 정반대의 언행을 하는 경우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와 변호사를 예로 들었지만, 정치는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변신과 둔갑을 밥 먹듯 하고 있다. 정파성이 강한 일부 언론도 어제와 전혀 다른 논지를 펼치고 있다. ‘철가면이 판치는 세상’이라는 조롱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한 가지 사례를 들여다보자. 정권이 바뀌면 으레 공기업 경영진의 거취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전이 벌어진다. 집권 세력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논리로 전 정권 인사들을 교체하려 하고, 권력을 잃은 야당은 임기 보장을 외친다. 그 얼마 전 자신들의 주장과 180도 반대의 논리를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설파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차라리 매번 논리를 바꾸지 말고, 정권 교체 시 정부 산하기관의 어디까지 교체하고, 어디까지 임기를 보장할지를 여야 협의로 정하면 어떨까 싶다. 그런 공감대도 없이 무조건 임기를 보장한다면, 정권 교체 직전 대규모로 공기업 경영자들을 임명하면 다음 정권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법이 아니더라도 정치 관행으로라도 정립했으면 좋겠다.

인사청문회는 더 가관이다. 야당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도덕군자를 기준으로 검증하려 든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을 질타하는 의원들 중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한 야당 시절 독하게 검증했던 여당은 갑자기 관대한 도덕군자로 변한다.

지금 국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문무일 검찰총장의 반발 또한 그렇다. 문 총장의 논거가 일리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동안 ‘괴물’처럼 커진 검찰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내부에서 이루어진 적은 없는지를 묻고 싶다.

‘남 탓’만 하는 표변, 자성 없는 강경론이 이토록 판치는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이 실질보다 명분이 더 중시되고, 그 배후엔 기득권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표변이 계속되면서 이 나라는 불신과 철면(鐵面)으로 더 나아가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이제 우리 솔직해지자. 서있는 현실은 진흙탕인데, 법과 도덕적 기준은 너무 높다. 걸면 다 걸리는 상황이니, 정치는 상대를 고소 고발하는 정쟁으로 날을 지새고, 칼자루를 쥔 검찰의 힘은 계속 커진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키지도 못할 수준으로 법을 만들지 말고, 예수나 공자가 와도 이행하기 힘든 규범을 제시하지 말자. 대신 기준을 낮추고 엄격히 적용하자. 공기업 인사, 청문회, 법안 논쟁뿐만 아니라 직권남용, 직무유기, 배임 등 최근 우리 사회, 우리 정치를 규율하는 법과 규범들을 현실화하자. 그러려면, 거짓 명분의 철가면을 벗고 현실을 얘기해야 한다. 그 논의는 나라를 끌어가는 정치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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