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계 애플’ 블루보틀은 왜 성수동에 1호점을 냈을까

입력
2019.05.03 16:30
수정
2019.05.04 00:42
구독

‘서울의 브루클린’ 기업 철학과 일치…개점 첫 날 인산인해, 7시간 기다린 손님도

3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 개점한 블루보틀(Blue Bottle) 1호점을 찾은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성수점에서는 앞으로 엄선한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 드립 커피ㆍ아이스 커피ㆍ에스프레소 음료 등 커피 메뉴를 판매한다. 또 국내 파티시에 '메종엠모'(Maison MO)와 협업해 만든 국내 한정 페이스트리 메뉴를 제공한다. 뉴스1
3일 오전 서울 성동구에 개점한 블루보틀(Blue Bottle) 1호점을 찾은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성수점에서는 앞으로 엄선한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 드립 커피ㆍ아이스 커피ㆍ에스프레소 음료 등 커피 메뉴를 판매한다. 또 국내 파티시에 '메종엠모'(Maison MO)와 협업해 만든 국내 한정 페이스트리 메뉴를 제공한다. 뉴스1

‘커피계의 애플’이라 불리는 미국 커피전문점 브랜드 블루보틀의 개점 첫 날 영향력은 대단했다.

블루보틀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1호점을 연 3일.

붉은 벽돌 건물에 특유의 파란색 병 모양 로고가 걸린 1호점 앞은 커피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오픈 시간인 오전 8시가 되기 한참 전인 새벽부터 소식을 듣고 몰려온 손님들로 북적댔고 개점 1시간 30분 전인 오전 6시30분에는 20명, 오전 7시가 되자 50명으로 늘었다. 오픈 시간 즈음에는 200여명까지 불어났고 오전 9시경에는 300~400명이 몰렸다. 오후에도 2~3시간은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올 정도였다. 친구 사이인 이난희(23)씨와 전경은(24)씨는 이날 0시 25분부터 무려 7시간 넘게 밤새 기다린 끝에 한국 1호점 첫 손님의 주인공이 됐다.

블루보틀은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커피광이었던 제임스 프리먼이 교향악단을 그만두고 20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친구 집 차고에서 1호점을 연 게 시초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원두를 직접 로스팅해 핸드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만드는 고급화 전략으로 ‘커피계의 애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서 68개 매장을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블루보틀의 한국 진출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시장 진출로 곧 삼청동에 2호점을 열 예정이다.

블루보틀 성수점은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를 비롯해 바리스타 교육과 시음회가 가능한 트레이닝 랩을 갖췄다. 빨간 벽돌 건물에 들어선 매장은 일본 건축가 조 나가사카가 설계했으며, 내부는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벽과 천장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1층 통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들게 한 게 독특하다. 1층에는 로스터리가 있고 고객은 지하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마실 수 있다.

블루보틀 내부의 모습.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벽과 천장이 그대로 노출돼 있으며 1층 통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들게 했다. 블루보틀 제공
블루보틀 내부의 모습.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벽과 천장이 그대로 노출돼 있으며 1층 통유리를 통해 자연광이 들게 했다. 블루보틀 제공

블루보틀의 대표 음료 ‘뉴올리언스’의 한국 가격은 5,800원으로 미국 가격 4.35달러(약 5,080원)보다 조금 비싸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는 5,000원, 라떼는 6,100원으로 에스프레소 기준 미국 3.5달러(약 4,075원), 일본 450엔(약 4,698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일본에 비해 커피가 조금 비싸다는 논란에 대해 블루보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적정선이라는 판단에 가격을 결정한 것이다. 많은 한국 소비자에게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책정한 가격”이라고 밝혔다.

왜 한국 사람들은 블루보틀 커피에 열광하는 걸까.

앞서 미국이나 일본에서 블루보틀 커피를 맛본 이들은 특별한 맛보다는 분위기를 꼽았다.

김혜린(29)씨는 “블루보틀 커피는 산미(신맛)가 강하고 어느 지점을 방문하든 맛의 평준화가 잘 돼 있다”고 평했다. 유승현(29)씨 역시 “산미가 있는 편이어서 라떼류는 잘 어울리지만 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맛보다는 분위기, 굿즈, 네임밸류 때문에 몰리는 것 같다. 일본에서도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개점 첫 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걸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많았다.

김지원(28)씨는 “블루보틀 커피가 맛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충격적인 정도는 아니다. 그저 갬성(감성), 보틀 로고사진, 인스타그램 업데이트용일 뿐”이라고 했다. 김가은(39)씨도 “평창올림픽 때 하얀 패딩을 줄 서서 사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맛 집으로 유명해진 가게를 방문한 뒤 인증 샷을 남기는 그런 심리 아니겠느냐”고 했다.

블루보틀 성수점에서 파는 토트백. 블루보틀 제공
블루보틀 성수점에서 파는 토트백. 블루보틀 제공

블루보틀이 한국 1호점 장소로 성수동을 택한 건 지역의 역사, 지리적 특성과 기업 철학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성수동은 1960~70년대 자동차부품, 철공 공장, 수제화 공방 등이 몰린 도심 속의 준공업지역이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이 쇠퇴하며 빼곡했던 공장들이 도심 외곽으로 이전해 활기를 잃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젊은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낮은 빈 창고를 리모델링해 공방, 스튜디오, 카페 등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켰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성수동이 ‘서울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이유다.

블루보틀은 약 2년 전부터 시장 조사를 했는데 성수동이 단순히 ‘힙플레이스(최신 유행 공간)’라는 점은 장소 선정의 큰 요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블루보틀 관계자는 “성수동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같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지역으로 지역과 공감하고 특색을 수용하려는 우리의 브랜드 철학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앞으로도 매장을 낼 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해당 지역하고 연결되는 지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