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국제공항 도시의 시장님들께

입력
2019.04.30 04:40
29면
인천국제공항 ©게티이미지뱅크
인천국제공항 ©게티이미지뱅크

공항으로 가는 길은 설렌다.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것만큼 가슴 뛰는 일은 흔하지 않다. 다른 나라에 간다는 건 익숙함과 잠시 작별하고 새로운 모험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그래서 공항과 비행기만 봐도 사람들은 가슴이 뛴다. 아무리 흔해진 해외여행이라 하더라도 여행은 늘 설렘과 흥분을 선물한다.

여행갈 때마다 책 한 권 이상 챙겨 가면 더 짜릿할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볼 게 많고 살 게 많은데 책 읽을 틈 없기도 할 것이고, 평소에 읽지 않아서 관심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비행기나 공항 사정 때문에 비는 시간이 생기면 어쩔 줄 모른다. 국내공항이라면 대합실에서 TV라도 볼 텐데 외국 공항에서는 딱히 할 게 없다. 상당수의 외국인들은 그럴 때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책 한 권 꺼내 천천히 읽다보면 그 지루할 시간 금세 지난다. 긴 비행시간에도 책 읽을 여유 있다. 기내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책 읽는 것도 제법 유익하고 즐겁다.

우리나라에 국제공항이 여럿 있다. 인천, 김포, 김해, 대구, 청주, 제주, 무안, 양양 등 8개의 국제공항이 있다. 공항 가는 길 좌우에 광고판들도 많다. 국제공항을 갖고 있는 도시에 제안하고 싶다. 그런 광고판 한두 개쯤 임대해서 이런 광고를 하면 어떨까? “시민여러분, 여행 잘 다녀오세요!” 그 광고판에 여행객의 기쁨은 배가될 것이고 여행가지 않는 시민들도 그 광고판 보면서 흡족할 것이다. 물건 파는 광고도 아니고 뻔한 관 주도형 캠페인도 아닌, 즐거운 인사에 당연히 뿌듯하다. 그 아래 다음의 문장 하나만 덧붙이는 거다. “그런데 책 한 권 챙기셨나요?” 즐거운 반전이다. 기분 나빠 할 사람 없을 것이다. 다음 여행 때는 책 한 권 챙겨야겠다고 마음먹을 것이다. 그 광고판 본 시민들은 뿌듯하고 자기 도시의 품격을 느낄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 온 시민들은 그 도시와 시민들에 대해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런 게 격조와 품위다. 자연스럽게, 뿌듯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시민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책 읽는 것 좋다. 그러나 읽지 않는다.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캠페인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삼촌 떡도 싸고 예뻐야 사먹는다. 같은 의도의 메시지라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콘텐츠로 다가서야 한다. 계도하는 듯한, 애걸하는 듯한, 혹은 명령하는 듯한 캠페인은 역효과를 부르지만 볼 때마다 미소가 번지고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메시지는 비용 대비 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2015년 인천광역시는 유네스코에서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되어 대대적인 행사를 치렀다. 예산도 상당히 지원했다. 도로마다 깃발이나 배너 등으로 그 행사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나름의 성과는 거뒀을 것이다. 그러나 인천 시민들 가운데 그걸 제대로 기억하는 이들은 평소 책 가까이 하는 사람 말고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 행사를 통해 책 읽는 시민이 늘고 도서관 예산과 콘텐츠가 증가하여 삶의 질이 성장했음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결과적으로 실패작이다.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인력은 인력대로 지원하면서 정작 이후의 효과는 없었다면 그건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에 불과한 것이고, 그 국제적 행사를 유치하면서 포장과 선전에만 골몰했음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가치뿐이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공항 오가는 길에 앞서 말한 그런 광고판을 세웠더라면 인천시민뿐 아니라 한국인 모두 뿌듯했을 것이고 외국 방문객들도 새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좀 빙긋 웃으며 삶의 질도 진화할 수 있는, 재치 있고 볼 때마다 마음 저절로 움직이는 그런 마인드를 가져보자.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들, 그러니까 서울, 인천, 부산, 대구, 청주, 김해, 목포(무안), 김포, 제주, 속초(양양) 등의 도시들이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 시민들과 환송 환영하러 가는 시민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서 책에 대해 친근감을 가질 수 있는 멋진 인사로 맞는다면 분명 우리의 여행 문화도 좀 더 품격과 내실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관(官) 냄새(?) 폴폴 나는 촌스러움보다 어떤 CF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광고를 기대해본다. 아무리 좋은 것 알아도 강권하거나 채근하면 짜증나거나 꺼려진다. 그러나 볼 때마다 기분 좋아지고 저절로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게 된다. 시민의 삶이 질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으면 도시의 품격도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시민들도 여행갈 때마다 책 한 권 챙겨서 공항이나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책 읽는 모습이 흔한 광경이 될 때 대한민국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우리, 그런 도시 그런 나라를 꿈꾸지 않는가? 공항 가는 길에서 그런 광고판을 볼 수 있기를 꿈꿔본다. 국제공항의 도시 시장님들이 그런 멋진 선택으로 우리의 삶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해 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을.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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