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학 칼럼] 평화공존 2.0

입력
2019.04.29 04:40
29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업무만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업무만찬을 갖고 있다. AP 연합뉴스

세계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평화공존’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양국 모두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발전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중국경제를 뜯어고치려고 해서는 안되며, 중국은 고용과 기술 누출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이해하고, 그래서 미국시장 접근에 제한을 두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평화공존’이라 하면 미소 간의 냉전이 생각난다. 소련의 수장 흐루쇼프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끝없는 체제갈등에 공산주의 정책이 더 이상 효과 없음을 알았다. 미국과 서방국가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기미도 없었고, 소련체제하에서 공산정권이 축출될 리도 만무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는 공존해야 했다.

냉전시대의 평화공존은 어불성설로 보일 수도 있다. 마찰도 많았고, 양국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얻기 위해 전쟁에서 자기편에 선 나라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 공존으로 핵무기로 무장한 두 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군사분쟁은 없었다. 미국과 중국의 평화적인 경제공존은 두 경제대국 간의 엄청난 무역전쟁을 방지할 유일한 해법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교착 상태는 국가성장 전략이나 사회모델에 상관없이 외국기업에 경제를 최대한 개방해야 한다는 잘못된 경제 패러다임을 근거로 하는 데, 나는 이것을 ‘하이퍼글로벌리즘’이라고 부른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국가경제 모델(시장을 지배하는 국내 규정)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의 규제와 기준이 시장 진입에 방해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이를 두고 무역경제학자와 법률가는 ‘비관세 무역장벽’이라고 한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주된 불만은 중국의 산업정책이 미국기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신용 보조금은 파산할 국영기업을 살려 과잉 생산하게 하며, 지적재산권 정책은 저작권과 특허를 유명무실하게 하고 경쟁자가 신기술을 쉽게 복제할 수 있게 한다. 기술 이전을 하려는 외국인투자자에겐 중국 기업과 합작투자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런 제한 때문에 미국 금융사는 중국 고객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이런 면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2,000억달러 상당의 중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더 늘리겠다고 한다.

여기에 중국은 중국의 수출이 미국 노동시장에 큰 타격을 주고 일부 중국기업이 기술을 훔친다는 주장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계속 수출과 투자에 개방적이기를 바라나, 세계 무역시장에 자국을 개방하는 것은 고용과 기술 진보에 대한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신중히 관리하고 있다.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양국의 국내 사회ㆍ경제적 목표를 우선시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국제 경제질서를 유지하는 등 서로 정책적 여유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중국은 중국 특유의 시장경제 구축을 위한 산업정책과 금융규제를 시행할 수 있고, 미국은 원하는 대로 노동시장을 보호하고 기술 또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국의 투자를 더 세세히 감독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관점이 보호무역주의의 봇물을 터트려 세계무역을 중단시킬 것이라는 의견은 개방무역정책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비교우위원칙에 의하면 무역을 하는 이유는 자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것은 다른 데서 보상이익을 얻거나 국내 정치가 실패했기 때문이다(손해 보는 사람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없을 때의 경우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무역은 사회를 더 궁핍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 만약 정치적으로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손해 보는 사람에 대한 보상을 제공할 때는 가능할 수 있다. 국제협정과 무역상대국은 이 두 가지를 확실하게 구별하지 못한다. 할 수 있다 해도 적절한 해결책 (보상을 가능하게 하고 지속하는 것)을 마련하거나 추가적인 정치 문제(대형은행이나 다국적기업과 같은 특별 이해집단의 공략)를 피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중국을 보자. 많은 분석가들은 중국의 산업정책이 경제 강국으로 탈바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관행을 제재하는 것은 중국과 세계경제에 이익이 안 된다. 경제학자들도 합의점을 못 찾은 경제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를 무역 협상가들과 배후에 숨어있는 특별 이해집단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아니 될 말이다.

보호무역주의의 험난함이 걱정되면 WTO이전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시대를 생각해보자. GATT체제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경제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다. 무역규칙은 약했고 덜 포괄적이었다. 그런데 세계무역은 세계생산량을 기준으로 볼 때 1990년 이후의 하이퍼글로벌리즘 시기보다, 2차대전 후 35년동안에 더 빨리 성장했다. 오늘날 중국이 외국 수출업자나 투자자에게 더 큰 시장이 된 것은 WTO에 순응하기보다 비정통적인 성장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되었다.

중국이 WTO에 가입했으니 이런 말은 무의미하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의 가입은 중국이 서구시장경제가 됐다거나 그렇게 될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중국은 서구시장경제도 아니고 그리 될 거란 근거도 거의 없다. 실수는 눈감아주는 것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 세계 최대 무역국인 중국을 수용하지 못하는 세계 무역체제는 급히 수리를 해야 한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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