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초록초록

입력
2019.04.26 04:40
29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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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판이 온통 푸르고 푸르다. 산 아래와 산 위의 빛깔이 다르고, 풀과 나무 종류에 따라 연두에서 연초록, 초록에 이르기까지 신록의 색깔 차이가 보인다. 가을 결실을 향해 달리는 초목의 청춘이 햇빛 아래서 푸르게 빛난다. 한해의 가장 ‘초록초록한’ 시절이다.

모두 푸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은 없어도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때다. 흰 철쭉도 순순해서 좋지만 철쭉꽃은 ‘분홍분홍한’ 것이 제격이다. 머지않아 짙은 향기로 유혹하는 아카시아 꽃이 눈부시게 피리라.

‘초록초록하다’, ‘분홍분홍하다’는 누리꾼들이 뜻을 강조하기 위해 쓰는 반복 표현이다. ‘아주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분홍 빛깔이 완연하다’라는 상태를 한 낱말로 간결하게 표현한다. “헛 완전 여자여자 스타일이네요ㅋ”, “남자남자해서 내 심장 너덜너덜ㅋ”에서는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이라는 추상적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여자여자’, ‘남자남자하다’를 썼다. “저도 지금 고기고기”, “새벽에 오랜만에 치킨치킨~”의 ‘고기고기’, ‘치킨치킨’은 ‘맛있는 고기를/치킨을 먹다’ 정도의 뜻이다. 대상 명사를 겹쳐 씀으로써 관련 행위까지 표현한다.

반복 표현은 ‘도란도란’, ‘싱글벙글’처럼 의성의태어가 대부분인데, 명사가 반복된 ‘곳곳’, ‘나날’, 부사가 반복된 ‘고루고루’, ‘따로따로’, 어간이 반복된 ‘드문드문’, ‘흔들흔들’ 등이 더 있다. 기존 표현이 부사와 관련된 것이 많다면 누리꾼들이 새롭게 만들어 쓰는 반복 표현은 명사를 반복한 것이 절대적으로 많다. 또 새로운 표현은 상태 묘사뿐만 아니라 추상적 특성, 대상과 관련된 행위까지 표현하는 등 기능이 폭넓다. 인터넷 통신 언어가 한국어의 표현력을 강화하고 있는 한 모습이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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