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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미국 뉴욕 앙데팡당 전시회에 출품한 ‘샘’. 미국 사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촬영했다. 작품(소변기) 귀퉁이에 리처드 머트(R. Mutt)이라고 서명돼 있다. 뒤샹이 출품 당시 사용한 가명이자 소변기 생산업자 이름이다.

지난 4개월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특별전’이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뒤샹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한 특별 회고전으로 ‘국내 최초로 마르셀 뒤샹의 변기 전시’라는 문구로 미술애호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쉽게도 한국에 온 것은 뒤샹이 뉴욕 전시회에 출품했던 원본은 아니고 복제품이기는 했지만….

뒤샹은 “예술이 다 아름다울 필요도 없고, 모두가 다 좋다고 하는 것만이 예술일 필요도 없다. 예술은 바로 우리 주위에서 가장 가깝게 존재하는 것들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뒤샹의 이 같은 선언은 마치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만큼 위력적이었다. 이 선언을 기점으로 현대예술에서 개념미술의 문이 열렸다. ‘예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다’라는 개념미술의 철학이 뒤샹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회화사 흐름을 뒤엎은 뒤샹 

회회사의 흐름을 크게 보면 마르셀 뒤샹 이전의 회화와 그 이후의 회화로 나눌 수도 있다. 그만큼 뒤샹은 회화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미술품이 일단 인공물이어야 한다는 관념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미술품이란 사람이 만든 인공물로서 자연의 대상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자연 상태의 나무토막이 아름답다고 해도 사람이 만든 가공물이 아니기 때문에 미술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어야만 미술품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뒤샹은 창조되지 않고 단지 발견된 오브제(objects)에 대해서도 미술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리스적인 미학에 따르면 예술은 자연 상태에 있는 대상의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데 뒤샹의 의도는 이러한 모방론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 뒤샹은 미술품에 대한 개념을 확장시켜서 이미 만들어진(ready made) 것도 미술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술품이 인공물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미술품을 만들려는 의도를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은 채로 만든 작품도 미술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술가가 직접 제작하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봤다.

마르셀 뒤샹은 25세까지는 파리에서 입체파 그룹으로 활동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1913) 같은 작품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는 28세에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고, 유채물감으로 그리는 미술을 포기하고 ‘기성품’인 물체를 ‘오브제’로 제시한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미술전 관계자나 관객, 미술평론가들을 놀라게 한 작품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파격적 시도는 ‘L.H.O.O.Q’라는 작품이다. 그는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에 턱수염을 그려 넣었다. 보통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일종의 장난 같은 시도다. 게다가 제목은 ‘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라고 붙여놓았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미술계의 권위를 부정하고 희화화한 시도인 것이다. 그의 수염 달린 모나리자는 다다이즘(Dadaism)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변기, 샘, 리처드 머트 

뒤샹은 전통 미술의 개념을 뒤엎어버리는 시도를 계속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샘(Fountain)’이다. 그는 뉴욕의 한 상점에서 소변기를 구입한 후 ‘샘’이란 제목을 붙인 뒤, 1917년 뉴욕 앙데팡당 전시회에 리처드 머트(Richard Mutt)라는 가명으로 출품했다. 이것이 당시 예술계를 뒤흔든 ‘리처드 머트 사건’이다. 이것은 미술품이라기보다는 단지 남자 소변기를 옆으로 눕힌 것뿐인 작품이다. 언뜻 보기에도 전혀 예술적인 창작행위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미술전은 심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샘’은 심사위원들 사이에 미술품으로 인정해야 하느냐에 관해 논란을 야기했고, 결국 작품은 전시되지 못했다. 머트 씨의 ‘샘’이 거부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운영위원들은 이것이 ‘천하고 창작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전시를 거부했다.

뒤샹은 왜 화장실에 흔히 널린 변기를 출품했을까? 가명을 사용한 이유는 뭘까? 그의 작품인 변기에 그가 서명한 이름, 리처드 머트는 사실은 이 제품의 생산업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뒤샹은 전시회 측에서 전시를 거부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명으로 출품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거부감과 비판이 일자 뒤샹은 드디어 자신의 이름으로 머트 씨를 옹호했다. 뒤샹은 ‘The Blind’라는 잡지를 통해 ‘샘’에 대한 미학적 논쟁을 제기하면서 예술가가 의도적으로 직접 미술품을 제작하지 않았더라도 예술가가 지각(知覺)하고 전시하는 행위를 통해 어떤 오브제라도 하나의 미술품으로 변용시킬 수 있음을 주장했다.

뒤샹의 주장은 ‘머트씨가 샘에 쓰인 변기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다시 발견하고 선택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물건 하나가 새로운 발상에 의해서 새 이름을 얻었으니 그의 일상적 실용적 의미는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의 한 대목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구절은,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꽃이란 가치로 다시 태어났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1917년 뉴욕에서 촬영된 마르셀 뒤샹의 사진. 거울 이미지 등을 합성해 5개 방향에서 촬영한 것처럼 표현했다.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개념미술과 경제학의 공통점 

뒤샹의 미술품 가치에 대한 이 같은 획기적인 안목은 경제학의 출발점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경제학에서도 그 출발선상에는 항상 선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학은 선택의 과학(Science of Choice)이라고 한다. 경제학에서 선택이란 여러 선택 가능한 대안(代案)들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택하는 일이다. 그것은 나머지 다른 비효율적인 대안들은 포기한다는 뜻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 대안들의 기회비용을 따져보아야 한다. 경제학자는 각 경제 주체가 이러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각자의 합리성(rationality)에 기초해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러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해서 경제학자는 인간의 경제적 행동에 대해서 예측 가능한 추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는 주어진 자원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배분하는 일이다. 효율적 자원배분이란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 산출량을 달성하거나 생산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는 낭비를 최소한도로 줄이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가용(可用) 자원은 최적 배분(optimal allocation)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술가가 작품을 위한 오브제 선택이 경제학적 선택처럼 최적의 대안을 찾는 일은 아니다. 더욱이 그들이 예술작품의 소재를 발견하고 선택하는 행위가 예측 가능한 합리성에 기초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새롭게 발견하여 선택한 소재는 갑자기 용도가 변경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그것은 합리성이나 기회비용의 개념으로는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가치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물의 일반적인 사용가치(use value)가 창의적인 안목을 통해서 예술적 가치로 치환된 것이다.

뒤샹은 이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예술관을 탄생시켰다. 어떤 대상을 평면적인 캔버스에 그리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물에 이름을 써넣거나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도 예술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변기이지만 뒤샹의 변기가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그것을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뒤샹처럼 평범한 것을 범상치 않게 보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 그 자체가 예술적인 창작행위다. 이처럼 예술은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이고, 평안함 속에서 불안함을 느끼며 편리함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이 곧 창작과정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그는 예술은 어느 것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주위에 있는 것을 다룰 뿐이며,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을 낯설게 발견하고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렇게 다르게 보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말처럼 다르게 생각하는 것(think different), 이런 사고가 현대 개념예술의 출발점이자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천인 것이다.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프랑스 파리에서 입체파 그룹으로 활동할 당시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1913ㆍ맨 왼쪽)를 포함해 마르셀 뒤샹의 주요 작품을 미니어처로 제작한 ‘여행가방 속 상자’(1966).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달 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르셀 뒤샹 특별전’에도 전시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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