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안과 밖] 꼬마 환자에 다가가려 뽀로로 옷 입는 원장님

입력
2019.04.21 16:00
수정
2019.04.21 18:50
11면

소아과 선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 중 하나는, 특정 병원을 방문했던 엄마 혹은 아빠들이 다양한 커뮤니티에 올려놓는 후기다. 물론 약간은 억지 혹은 상업적 느낌이 나는 후기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엄마, 아빠들은 후기만 봐도 안다. 아이들 건강을 챙기는 부모들의 놀라운 촉은 무시할 수 없다.

소아과의 선택은 대체로 거주하는 동네나 아무리 넓어야 구 단위 정도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광고 등 홍보수단보다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후기나 입소문이 소아과 선택에 결정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일곱 살 남아를 키우고 있는 필자 또한 후기에 의지해 소아과를 선택했다. “왠지 모르게 편하게 해 주는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 애가 좋아하고 편안해 보이네요”라는 후기에 끌려 지난주 토요일 오전 한 소아과를 찾았다.

우리 차례가 돼 코를 훌쩍거리는 아이를 번쩍 안고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 병원을 칭찬했던 긍정후기의 실체를 알 수 있게 됐다. 이 병원 원장님이 긍정후기를 이끌어 낸 것이었다. 언뜻 봐도 50대 이상으로 느껴지는 원장님인데 일단 입고 있는 옷이 의사들이 입는 흰 가운이 아니었다. 매우 경쾌해 보이는 파란빛의 의사복에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뽀로로가 새겨져 있었다.

대기실에서 목이 아프다며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만화책을 보다 금세 싫증을 냈던 아이가 뽀로로가 새겨진 의사복을 입은 원장님을 보더니 평안을 찾았다. 하지만 입을 벌려야 어디가 아픈지 진단을 할 수 있는데 아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원장님이 아무리 “아~”를 해도 입을 벌리지 않는다. 그러자 원장님은 “뽀로로가 목을 보여 달라고 하네”라며 책상 위 인형을 가리켰다. 아이는 이내 입을 벌렸고, 원장님은 매우 신속하게 아이의 병을 진단했다. 모니터로 아이의 아픈 목 부위를 응시하는 원장님의 눈빛은 아이를 바라보던 눈빛과는 달랐다. 진료 후 목이 많이 부었으니 약을 잘 먹고 가습에 신경을 쓰라며 특히 외부활동을 자제해야 한다고 세심하게 일러주셨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감사한 마음에 원장님에게 두 번이나 90도 인사를 했다.

뽀로로 원장님처럼 소아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만화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은 솔직히 의사의 실력과는 별 관계가 없다. 의사의 취향이나 사고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에 대한 정의’를 곱씹어 보면, 병원에 방문하는 모두에게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작업은 건강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역으로, 치료와 별반 상관없는 외적 환경에 신경을 쓰는 병원일수록 의사의 실력을 의심할 수도 있지만 환자에게 따뜻하게 친절하게 다가서려는 의사들의 노력은 아이는 물론 부모에게도 감동을 줄 것이다. 부모들은 실력이 빠진 무의미한 배려인지, 아니면 실력에 더해 아이의 건강을, 크게는 환자의 건강을 위한 현명한 배려인지 알 수 있다. 똑똑한 ‘스마트 컨슈머’들이니 말이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서강헬스커뮤니케이션센터장)

유현재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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