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흑형’이 칭찬 표현?

입력
2019.04.19 04:40
29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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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고도로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지고, 그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대립과 갈등 관계에서 차별과 비하, 혐오 표현을 쓰는 일이 많다. 어느 사회나 차별 언어가 존재하지만 한국은 정도가 특히 심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차별 표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인종 차별 표현이다. 서양 백인들을 가리켜 ‘양놈’, ‘흰둥이’, ‘흑인’을 ‘깜둥이’, 한국의 주위 민족들을 ‘짱개’, ‘쪽발이’라고 부르는데, 모두 널리 알려진 차별 표현이다. 인권 의식의 확산으로 쓰임이 줄긴 했지만, 이런 표현들 가운데 차별과 혐오의 정도가 가장 심한 말이 ‘깜둥이’다. 흑인들의 피부 색깔이 아주 까맣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와 다른 ‘그들’로 타자화(他者化)하고 낮잡아 표현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흑인을 가리켜 ‘흑형’(黑兄)이라는 새말을 쉽게 쓴다. ‘흔한 흑형의 점프력’, ‘흑형들 몸 좋네’, ‘흑형 리듬 보소’, ‘흑형의 미친 가창력’의 보기처럼 흑인들이 운동, 춤, 노래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다는 문맥에서 잘 쓰인다. 언뜻 보면 놀라운 능력을 가졌음을 칭찬하고 친근함과 존경심까지 드러내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흑형’은 흑인들을 오히려 무시하고 차별하는 표현이다. 방송에서 한 흑인 출연자가 ‘흑형’은 ‘한국인에게 조센징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당사자들은 이 말을 전혀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겉만 보아서는 칭찬 같지만 기본적으로 ‘흑인은 무능력자’라는 강한 무시, 비하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뛰어난 능력을 칭찬하려면 ‘흑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말해야 뜻이 진실하게 전달되고, 인종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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