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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여자축구 대표팀 지소연과 U-12 대표 조혜영 
 “타지생활 어떻게 이겨내냐고? 외로울 틈 없이 축구공을 차라” 
 #어린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와 박세리, 김연아 등을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는 [꿈을 만나다] 시리즈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고민을 나누며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여자축구 유망주 조혜영(왼쪽)과 국가대표 에이스 지소연이 7일 경기 수원시 한 호텔 로비에서 밝게 웃고 있다. 김형준 기자

서울 오주중 여자축구부 공격수 조혜영(13)양은 경남 진주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 서울 유학을 택했다. 서울로 ‘축구 유학’을 떠나겠단 얘기에 처음엔 부모도 결사반대 했지만, 지난해 여자축구 12세 이하(U-12)대표팀에 선발돼 한일 교류전을 뛴 조양이 축구선수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워낙 강해 결국 딸 고집에 두 손을 들었단다.

조양이 오주중을 고집한 데는 한국 여자축구 에이스 지소연(28ㆍ첼시 레이디스) 영향이 컸다. ‘소연 언니처럼 되겠다’는 일념 아래 머나먼 타지로 와 합숙생활을 하고 있는 조양은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아이슬란드와 두 차례 평가전을 위해 소집된 지난 7일 대표팀 숙소였던 경기 수원시 한 호텔에서 자신의 우상을 마주했다. 얼굴을 마주하기 전 이런저런 수다를 털어놓던 소녀는 정작 ‘소연언니’가 앞에 앉자 한동안 말도 제대로 못하며 배시시 웃기만 했다.

지소연이 “내가 우상이라는 중학교 후배를 만나니 되레 내 가슴이 벅차다”며 먼저 조양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2002 월드컵 때 남자 성인 선수들을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이문초등학교에선 남자 선수들 틈바구니에 끼어 대회에 출전했다”며 “10여 년이 흘러 나를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내 발자취를 따르고 싶어하는 선수가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실제 지소연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남자 아이들과 공 차는 모습이 김광열 당시 이문초등학교 축구부 감독 눈에 띄어 발탁된 건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내 머리카락이 짧고 얼굴도 검게 타서 (김 감독이)날 남자 아이인 줄 알았다더라”는 후일담에 조양의 웃음이 터졌다.

한국 여자축구 유망주 조혜영(왼쪽)과 국가대표 에이스 지소연이 7일 경기 수원시 한 호텔 로비에서 서로의 사인이 담긴 축구공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형준 기자

웃음이 터지자 이런저런 궁금증도 터져 나왔다. 지소연보다 열다섯 살 어린 조양이 “15년 후 언니만큼 좋은 선수가 되려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하는지”를 묻자 지소연은 “일단 주어진 훈련량을 충실히 따르고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지소연이 요즘 오주중 훈련 일과를 궁금해하자 조양은 눈 떴을 때부터 감을 때까지 일과를 읊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밥 먹기 전까지 1시간 30분을 운동하고, 학교생활 한 뒤 오후 훈련과 야간훈련을 한다”고 했다. “일과가 끝나는 건 오후 8시 30분”이라는 조양 얘기에 지소연은 “(15년 전과)거의 비슷한 것 같다”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고된 훈련을 묵묵히 해내는 후배에 대한 기특함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섞인 미소일 테다.

조양은 일본과 영국 무대를 거치며 오랜 해외생활을 하고 있는 지소연에게 “타지생활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했다. 지금은 축구가 너무 좋고, 언니들과 즐겁게 합숙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서울 생활을 하다가 한 번쯤은 찾아올 외로움이 걱정된 모양이다. 지소연의 해답은 간단명료했다. “축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 일본에 갔을 땐 일본어도 잘 못하고 처음 해보는 타지생활이 막막했지만 ‘외로울 틈이 없도록’ 운동에 몰두한 것 같다”고 했다.

지소연은 “어릴 때부터 축구공과 항상 가깝게 지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성장하면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지소연도 가족들과 가까운 국내 실업팀에서 최고 선수로 군림하며 지날 수 있었지만, 2010년 일본 고베 아이낙에 입단한 뒤 5년 전 잉글랜드 프로축구 명문 첼시 여자팀에 입단하며 유럽무대를 개척했다. “한국이 3위를 차지했던 2010년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 때 세상엔 정말 잘 하는 선수가 많다고 느꼈다”는 게 지소연이 말한 해외무대 도전 이유다.

한국 여자축구 유망주 조혜영(왼쪽)이 7일 경기 수원시 한 호텔 로비에서 한난 여자국가대표 에이스 지소연이 내민 공에 사인을 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조양도 “연령대별 대표팀을 모두 거치며 세계 여러 나라 선수들과 부딪혀보고, 나중엔 언니처럼 유럽 무대에 진출해 한국 선수들과 맞대결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지소연은 “너무 기특한 생각”이라면서도 “혜영이가 성인대표팀이 됐을 때쯤엔 여자 A매치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2006년 10월 캐나다와 피스퀸컵을 통해 남녀 선수를 통틀어 최연소인 15세 8개월의 나이로 A매치에 데뷔한 지소연은 줄곧 성인대표팀에 발탁됐음에도 대표팀 생활 13년차인 지난해에야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에 가입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현재와 미래가 만난 이날 대화의 끝은 오는 6월 8일(한국시간) 프랑스에서 개막하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얘기로 흘렀다. 조양은 지소연에게 “월드컵 때 성적도 좋지만 다치지 않고 최선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소연은 “4년 뒤면 혜영이가 열일곱 살이 되는데, 빨리 성장한다면 월드컵을 같이 뛸 수도 있겠다”며 ‘동반출전’ 기대를 전했다. 지소연은 자신의 유니폼에 대표선수들의 친필사인을 손수 담아 조혜연에게 전한 뒤 축구공엔 조양의 사인을 받았다. 하루빨리 대표팀에서 함께 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단 약속을 받은 셈이다.

수원=글ㆍ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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