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24시] “말만 지진지역 부흥” 비난에 외부로 화살 돌리는 아베

입력
2019.04.14 16:00
수정
2019.04.14 21: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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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일 총리관저에서 취재진에게 사쿠라다 요시타카 올림픽 담당 장관의 사퇴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일 총리관저에서 취재진에게 사쿠라다 요시타카 올림픽 담당 장관의 사퇴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도쿄=교도 연합뉴스

“각료 전원이 ‘부흥 장관’이라는 기본 방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면서 후쿠시마(福島) 그리고 도호쿠(東北) 지역의 부흥을 이루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결심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4일 약 5년 7개월 만에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를 시찰한 자리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전날 도쿄(東京)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 사회 각계 인사들을 초청한 벚꽃행사에서도 “앞으로도 재해지역의 여러분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정부의 부흥 의지를 알렸다.

아베 총리가 ‘부흥’을 강조하고 나선 건 최근의 잇따른 대내외적인 악재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0일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전 올림픽 담당 장관을 경질했다. 그가 자민당 소속 다카하시 히나코(高橋比奈子) 중의원 후원모임에서 “부흥 이상으로 중요한 건 다카하시 의원”이라고 발언한 지 단 두 시간만이었다. 이달 말 통일지방선거와 중의원 보궐선거, 7월 참의원 선거 등에 불똥이 튀지 않도록 발 빠르게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후 더 큰 돌발변수가 생겼다. 지난 12일 일본이 한국의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판정에서 패소한 것이다. 승소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농수산물 수출을 확대, 지역경제 부흥으로 이끌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정부의 낙관론에 승소를 기대했던 일본 어업계는 “희망이 사라졌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에선 “아베 정부가 말로만 부흥을 외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자민당에서도 “일본 정부의 외교능력이 부끄럽다”, “풍평피해(風評被害ㆍ소문으로 인한 피해)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베 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앞서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인 도호쿠 부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흥 과제는 정치의 뒷전이었고, WTO 판정에 대한 정부의 오판이 되레 지역 부흥의 발목을 잡은 모양새가 됐다. 도쿄신문은 “외무성이 WTO 상소기구의 판정 직전까지 패소를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정부 내에서도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각료의 실언과 정부의 오판으로 지역 부흥에 대한 신뢰도에 상처를 입자, 아베 정부는 비판의 화살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은 지난 12일 “WTO 상소기구 위원의 정원은 7명인데 현재는 (심리의 최저선인) 3명뿐”이라며 “위원을 선임하지 않으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에서 국제법 준수를 강조해온 일본이 WTO의 분쟁해결 기능을 문제삼은 것이다.

WTO 패소 이후 총리관저와 외무성 주변에선 아베 총리가 오는 6월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 측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고 있어 빈손 회담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은 당초 WTO의 승소 판정을 예상, 위안부ㆍ강제징용 판결 등 한일 간 갈등현안들도 ‘국제사회의 룰’에 따라 해결하는 선례로 삼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패소로 한국을 압박할 수단이 사라지면서 느닷없이 한일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WTO 패소에 대한 비판여론을 무마하려는 노림수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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