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카톡방담] 빅딜ㆍ스몰딜 사이에서… 문대통령의 험난한 미션 ‘굿 이너프 딜’

입력
2019.04.13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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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대통령 공들인 임시정부 100년 행사도 포기하고 방미 

 북한, 제재 해제 급해도 “자력갱생”, 미국은 상황 관망 배짱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숙 여사,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숙 여사,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40여일이 지난 가운데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포스트 하노이’ 전략을 세우고 새판짜기에 들어간 국면이다. 북측은 ‘단계적 비핵화’를, 미측은 ‘일괄타결식 빅딜’을 주장하면서 접점을 찾는 데 실패한 후 한반도 정세가 중대국면을 맞고 있다. 냉각기가 더 길어지면 북미 간 간극이 벌어져 결국 북핵 문제가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는 쪽으로 작용할 경우 남북미 3자 모두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남북미의 움직임을 놓고 본보 외교안보팀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한미 정상회담 날짜(11일)가 공교롭게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개최 날짜와 같았죠. 이날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했어요. 우연인가요. 포개진 한반도 빅 이벤트들의 파장은 뭔가요.

판문점 메아리(메아리)=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이 합의문도 못 만들고 헤어진 뒤 문재인 대통령은 속이 탔을 듯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둘을 만나고 싶었을 거예요. 지난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한반도 해빙 분위기는 사실 남북미 정상의 ‘케미스트리’(궁합)에 의존한 측면이 큽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나서지 않았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만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은 문 대통령이 공을 들인 행사입니다. 그런데도 포기할 만큼 지금 북미 간에는 뭔가 다시 만날 명분이 절실했고 그걸 만들어줘야 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게 문 대통령 판단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남북미 최근 주요 발언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남북미 최근 주요 발언_김경진기자

올해는 뚜벅이=정부가 조속히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트럼프가 빨리 김 위원장 입장을 전달해달라고 화답한 걸 보면 판문점 회담 1주년인 4·27 등 상징적인 날짜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일시를 맞추려 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도렴동 흰둥이(흰둥이)=한미 정상회담은 하루빨리 북미 대화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절박함으로 성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만 보면 꽤 급박합니다. 지난달 20일 전후 외교부 실무진 방미, 29일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이어 4월 첫째 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미국 방문까지 약 일주일 간격으로 회담 급을 높이면서 3주 만에 4ㆍ11 정상회담에 ‘골인’한 것이죠. 게다가 문 대통령의 미국 일정도 24시간 내로 간소화해 한미 정상 간 만남에 의미를 둔 ‘실속형’으로 꾸려졌습니다. 초반 실무진 방문 때만 해도 대북 제재 완화 관련 양국 입장 차가 심하다는 우려가 대세였던 반면 정상회담 후 남북대화 등 북미 협상 재개 방안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의도했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불나방=이번 주 잇따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중 주목할 부분은 뭘까요.

마음은 콩밭에=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재개에 쉽게 응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밝혔다는 점입니다. “제재로 우릴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한 적대 세력”이라고 미국을 부르면서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밝힌 건데요. 비핵화 시간표를 내놓으라는 미국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큰소리 쳐놓은 만큼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협상을 중단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일단 ‘현상유지’를 하려는 듯합니다.

불나방=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죠. 재개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요. 문 대통령의 역할은 있을까요.

밥먹었더니 배불러(배불러)=빅딜과 스몰딜의 절충인 조기수확론을 내세운 문 대통령은 북미 양측 모두로부터 조금씩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 같은데, 한미 정상회담이 끝났으니 남북 간 대화가 이뤄지고 난 후에야 문 대통령의 역할이 가시화할 것 같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북미 노딜 이후 주요 움직임_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북미 노딜 이후 주요 움직임_김경진기자

메아리=북미 양쪽 다 파국을 바라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로 먼저 양보하지 않으려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이나 최고 지도자로서 행정부 수반으로서 자기 입장이 있는 거고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줄곧 해온 것처럼 3차 회담이 가능하다고,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트럼프는 말했어요. 김 위원장에게도 이제 도발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너무 멀리 왔습니다. 핵ㆍ미사일 시험을 재개하거나 하면 중국과 러시아마저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제재는 더 강화할 테고요. 경제가 곤두박질치겠죠. 정권도 흔들릴 겁니다. 다시 대화에 나설 명분만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설득이 문 대통령의 몫일 수 있죠. 교착이 장기화하면 경제 건설로 노선을 틀었던 김 위원장도 어쩔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강경파 입지가 강해질 테니까요. 북미 협상은 거래입니다. 이익이 중요한 겁니다. 진정성은 없다가도 생길 수 있고, 있다가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동기를 확인하는 것보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협상이란 말을 외교관들은 합니다.

불나방=북한이 바라는 게 대북 제재 해제라는 사실이 하노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죠. 제재를 유지하며 기다리면 북한이 결국 굴복하고 나올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고 있는 듯해요.

배불러=당장은 북한이 자력갱생하겠다고 나오고 있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어느 정도 북한을 도와주느냐에 북한의 굴복 시기가 정해질 거 같습니다. 경제 제재는 천천히 숨통을 조이는 거라 원론적으로 미국은 급할 게 없고, 북한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 보입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관계 개선을 재선에 이용하려 한다면 미측도 시간이 많은 건 아닌 셈이긴 합니다.

메아리=문제는 권력층입니다. 북한이 수탈 경제다 보니 돈줄이 끊기면 권력층에서 불만이 생기고 권력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루마니아처럼 무너진 동구권 독재자들을 보면 통제 가능하다고 여겼지만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았죠. 제재 국면이 장기화하면 김 위원장이 망명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겁니다.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이기는 합니다. 지금 상태만 유지되면 야당으로부터 공격 당할 일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위협이 제거되지 않은 현 상태에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큰 업적을 위해 제재 해제를 레버리지로 사용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합니다.

불나방=우리 정부가 제안한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합의)의 요체는 무엇인가요.

흰둥이=청와대가 제시한 ‘굿 이너프 딜’은 포괄적 비핵화 합의 및 단계적 이행 기조를 새로운 말로 포장한 개념입니다. 미국에 단계적 비핵화 이행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되 ‘빅딜’과 ‘스몰딜’의 대립 구도를 흐리게 해 양측에 합의 부담을 덜게 하려는 의도 하에 나온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아직까지 외교가에선 지지보다 의문이 많은 듯 합니다. ‘굿 이너프’라는 것이 사실상 합의의 알맹이라기보다는 프레임 차원이자 ‘좋은 합의’라는 평가를 뜻할 뿐이어서죠. 또 일각에선 북미 양측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태에서 “대체 누구에게 좋은 합의냐”는 의구심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구체적인 비핵화 중재안을 고안해 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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