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11일 헌법재판소는 자립형사립고(자사고) 지원자들이 일반고에 중복으로 지원하지 못하는 현행법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다만 자사고의 학생 우선선발권 금지한 것은 합헌이라고 밝혔다. 홍윤기 인턴기자

자사고 폐지 논란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자사고의 전기 선발 폐지와 일반고 중복지원 금지를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 갈등을 빚은데 이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극한 대치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는 자사고와 사전 협의 없이 재지정 기준점을 상향하고, 교육청이 감사 지적 등을 이유로 감점할 수 있는 점수를 12점으로 대폭 높이는 등 ‘폐지 수순’의 평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11일 헌재가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위헌 소송에서 동시선발은 합헌, 중복지원 금지는 위헌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로써 자사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더 중요해졌고, 6월 이후 평가 결과에 따라 엄청난 충돌이 재연될 수 있다.

이렇듯 첨예한 논란이 있음에도 자사고 폐지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고 이미 교육부가 자사고 폐지 로드맵을 가시화한 데다, 소위 진보 계열 시도 교육감들이 적극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사고 폐지 논리는 자사고가 입시기관화하고, 우수학생 선점으로 일반고를 황폐화시키며, 사교육 유발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해 인재 양성과 교육 발전에 기여해 온 자사고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다. 무학년 수업, 교과교실제, 과목선택제, AP수업, 독서교육, 철학수업 등 오히려 일반고가 벤치마킹하는 선도적 교육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 우수학생을 선점해 일반고를 황폐화시킨다는 생각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미 서울 지역 자사고는 내신 성적 제한 없이 추첨 등으로 선발하고, 서울을 제외하면 시도마다 극소수에 불과한 자사고가 우수학생을 싹쓸이한다는 것도 비평준화 지역 우수 명문고를 고려하면 타당하지 않다. 자사고를 없앤다고 일반고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풍선효과로 과학고, 영재고, 강남 8학군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그러면 이들 학교도 없앨 건가.

입시기관으로 변질되고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것도 확대 해석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적용으로 자사고도 국ㆍ영ㆍ수 등 기초교과가 총 교과 이수 단위의 50%를 넘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교라면 어느 학교든 대학입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양하고 내실 있는 교과 및 비교과 교육의 결과라는 점은 애써 외면한 채, 높은 진학실적이 마치 설립 취지를 팽개치고 입시에만 매달린 결과인 것처럼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사교육은 학벌 위주의 사회구조와, 학력 간 임금 격차라는 사회적 문제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 자사고가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자사고는 평준화 교육이라는 기초와 수월성 교육과의 조화, 우수 인재 해외 유출 방지를 위해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되고, 노무현 정부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제도 자체의 문제인지 운영의 문제인지 객관적이고 면밀한 검증과 평가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폐지하려는 것은 고교 교육 발전을 위한 올바른 처방이 아니다. 교육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미래 교육 환경을 고려할 때, 우리도 수월성 교육과 학교 다양화를 통해 학생ㆍ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자사고 폐지론에 매몰돼 오히려 일반고를 어떻게 살리고 지원할지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사고는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고, 일반고의 우수 교사들을 활용한 운영의 다양성 확보와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 강화, 이를 뒷받침할 행정ㆍ재정적 지원 확대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자사고와 일반고가 공정한 교육적 경쟁을 통해 상호 발전을 견인하는 상생과 상향평준화의 고교 체제 구축을 모색해야 한다.

박인현 대구교대 교수ㆍ한국교총 부회장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