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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중세 유럽인에 이슬람은 무엇이었나 
  ※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 이슬람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명 명지대 교수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매주 들려드립니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도미니코 디 미켈리노가 그린 단테의 '신곡' 이야기. 단테가 오른손으로 지옥을 가리키고 있다. 뒤에 있는 산은 연옥을 그리고 하늘은 천국을 상징한다.

단테는 14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으로 그의 작품 ‘신곡’은 서양 문학사에서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가 이룩한 장편 서사시의 전통을 잇는 고전으로 꼽힌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신곡’에는 5명의 무슬림이 등장한다. 단테는 이들을 나름대로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 분류한 후 일부는 지옥에서 가혹한 처벌을 받게 하고, 다른 일부는 선량하고 의로운 자로 간주하여 형벌을 면해주었다. 왜 같은 무슬림인데 누구는 악인이고 누구는 의로운 자일까. 우리는 ‘신곡’을 통해 중세 유럽인들이 무슬림을 어떤 기준에서 바라보고 평가했는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신곡’에 묘사된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 

‘신곡’은 1321년 단테가 사망하기 직전에 완성한 작품으로, 작중 화자인 단테가 저승세계로 여행하며 그곳에 사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등 세 편으로 나뉘는데, 각 편은 33개의 곡(曲)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무함마드, 알리, 이븐 시나, 이븐 루쉬드, 살라딘 등 5명의 무슬림이 등장한다.

단테는 5명의 무슬림 가운데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시아파의 창시자 알리를 지옥의 깊숙한 곳에서 끔찍한 형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했다. ‘신곡’에서 지옥은 총 9개의 원(圓)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원에는 죄가 가장 가벼운 자들이, 그리고 제9원에는 죄가 가장 무거운 자들이 거하고 있다. 무함마드와 알리가 갇혀있는 곳은 제8원이다. 이곳에서 무함마드는 ‘불화의 씨를 뿌린’ 죄목으로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거나 가슴이 찢어져 창자가 튀어 나오는 매우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다.

단테는 이탈리아 중부의 피렌체에서 1265년에 태어났는데, 그가 십자군 전쟁(1096~1291) 말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슬람의 창시자를 이처럼 묘사한 것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의문은 왜 단테가 무함마드를 일반 이교도와 다른 죄목으로 처벌 받게 만들었냐는 점이다. 일반 이교도의 경우는 제6원에서 불에 그을려 신음하는 벌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이들과 다른 장소인 제8원에 갇혀 불화의 씨를 뿌린 죄목으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생각한 이슬람 

단테가 무함마드를 불화의 씨를 뿌린 죄목으로 벌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교리 논쟁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 경전 쿠란에는 ‘알라’라고 불리는 신이 유일신 창조주로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슬람은 알라가 인류 전체에 계시를 내렸고, 그 과정에서 모세, 예수, 무함마드가 각각 구약, 신약, 쿠란을 계시 받았다고 가르친다. 이슬람의 교리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모세와 예수의 뒤를 잇는 예언자인 셈이다. 또한 쿠란에는 예수가 병든 자를 치료하거나 다양한 기적을 행하는 위대한 예언자로 묘사되어 있다. 언뜻 보면 이슬람과 그리스도교는 예수에 대한 입장이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이슬람에서 예수는 오직 인성만 갖고 있는 예언자이지만,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갖춘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도레가 '신곡' 삽화로 그린 무함마드가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

그리스도교 역사 초창기에도 예수의 인성과 신성 문제를 놓고 치열한 교리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사제 아리우스는 예수가 하느님의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부와 동격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 아리우스의 주장으로 인해 그리스도교 세계는 분열되어 격론을 벌였고, 결국 아리우스파는 325년에 개최된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300여년 후에 이슬람이 등장하여 과거 아리우스파와 유사하게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것이다. 당시 정통 교리를 따르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게 이슬람은 사막에서 부활한 제2의 아리우스파쯤으로 여겨졌다.

이슬람을 아리우스파에서 유래한 이단으로 소개한 대표적인 인물은 8세기 다마스쿠스에서 살았던 요한이라는 멜키트파 소속의 그리스도교 신학자였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 ‘인식의 원천’이라는 책에서 무함마드를 거짓 예언자라고 소개한 후 “그는 우연히 구약과 신약을 접했고 아리우스파 수도사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 그는 자기 마음대로 새로운 이단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중세 유럽 신학자들은 이슬람을 단순한 이방 종교가 아니라 과거 아리우스파처럼 그리스도교를 뿌리 채 뒤흔들고 또다시 분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종교로 여겼다. 단테가 무함마드에게 ‘불화의 씨를 뿌린’ 죄목을 씌운 것은 바로 이 같은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현과 선지자처럼 존경 받은 3명의 무슬림 정체는 

‘신곡’을 읽을 때 당혹스러운 점은 단테가 무함마드와 알리를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과 대조적으로, 나머지 3명의 무슬림인 이븐 시나, 이븐 루쉬드, 살라딘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단테는 작품 속에서 이들을 ‘림보(Limbo)’라는 곳에 거하고 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림보는 죄가 가장 가벼운 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옥의 제1원을 가리키는데, 말로만 지옥이지 실제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정죄와 희망의 공간이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은 크게 두 부류에 속한다. 하나는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어린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났던 의로운 자들이다. 다시 말해 림보는 고대 그리스의 문학가와 철학자인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구약 성서의 위대한 선지자인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 등이 머무는 특별한 장소다. 이들은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고 구원받을 만한 가치를 지녔지만,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나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으로 직행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단테가 살라딘, 이븐 시나, 이븐 루쉬드를 고대 그리스의 성현이나 구약의 선지자와 동일한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비록 무슬림들이긴 하지만 이들의 위대한 도덕성과 학문적 업적을 존경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한 것 역시 중세 시기부터 유럽인들이 무슬림에 대해 가졌던 또 다른 시각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도레가 '십자군의 역사' 삽화로 그린 살라딘의 영웅적인 모습

상기한 3명의 무슬림 가운데 살라딘은 1187년에 예루살렘을 십자군으로부터 탈환하는데 성공하여 이슬람 세계에서 영웅이 된 인물이었다. 그는 유럽 측에서 보면 처단해야 할 이교도 무리의 수장임에 분명했지만, 오히려 오랫 동안 유럽에서 기사도의 모범을 보여준 영웅으로 칭송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포로가 된 십자군을 큰 살생 없이 석방해 주었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에는 그리스도 교회를 보존하고 유대교 예배당을 지어주며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또한 살라딘은 자신과 대적하기 위해 출정한 영국의 리처드 1세와 ‘브로맨스’를 방불케 하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비록 적이긴 했지만 리처드 1세가 열병으로 앓아 눕자 과일을 선물했는데, 이 미담은 입소문을 통해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

한편 이븐 시나와 이븐 루쉬드는 중세 시기 유럽의 지식인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무슬림 학자였다. 이븐 시나가 저술한 ‘의학대전’은 12세기 무렵 라틴어로 번역되어 17세기 중반까지 유럽의 의과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는 유럽에서 라틴어 이름인 ‘아비센나’로 불리며 의학의 스승으로 대접 받았다. 한편 이븐 루쉬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관한 주해서를 저술한 철학자다. 13세기 무렵 그의 저서가 라틴어로 번역되자 그는 라틴어식 이름인 ‘아베로에스’로 불리며 유럽에서 가장 정통한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로 명성을 떨쳤다.

흔히 ‘신곡’은 중세의 마지막이자 르네상스 시대를 연 문학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선과 악에 따른 처벌과 보상을 강조하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종교관과 함께 인류를 죄의식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이중적 가치관은 단테가 5명의 무슬림을 평가할 때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는 중세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을 아리우스파처럼 분열을 일으키는 종교로 보고 그 창시자를 단죄했다. 반면 도덕과 이성적으로 완전한 경지에 오른 인물에 대해서는 종교적 편견 없이 평가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보편적 가치관을 보여 주었다.

김정명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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