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마블링 소고기는 악인가

입력
2019.04.12 04:40
31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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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봐야 뭐하겠노 소고기 사묵겠제.”

몇 해 전 코미디 프로그램 유행어를 들으면서 기분이 묘했다. 저 말에는 다양한 뉘앙스가 있을 텐데, 다른 소용이 없을 때 돈의 쓸모가 소고기 사먹기라는 것이었으리라. 소고기는 귀하면서도, 사먹기에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뜻이 있는. 코미디 유행어는 당대를 반영한다. 유머는 공감에서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변하는 시대를 상징하는 유머 코드로 선택된 소고기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수입 소고기가 흔해지기 전만 해도 소고기는 정말 먹기 어렵지 않았는가. 조상들의 기록에는 소고기를 둘러싼 수많은 일화가 있다. 그중에서 소를 못 잡게 하는 금우령과 ‘금살도감’의 설치는 흥미롭다. 농경국가에서 소는 경운기이자 트랙터였으니,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가 역축의 일을 놓고, 순전히 고기로 기능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밥에 고깃국은 민족의 염원이었다. 북쪽에서는 국가 수반의 연두교서 같은 것에 자주 등장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남쪽도 마찬가지여서 시골에서는 친지 방문에 소고기 두어 근 사는 풍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선친이 고향에 가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기차에서 내려 식육점에 들르는 것이었다. 집안 어른 수를 헤아려 한 근씩 소고기를 따로 샀다. 물론 국거리였다.

1980~90년대 경제성장기를 떠올리면 늘 몇 가지 소묘가 있다. 그중에 소고기 먹기는 빠질 수 없다. 생일 아니어도 아침에 소고깃국을 먹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생겼달까. 이른바 ‘가든’이라는 소갈비집이 강남을 중심으로 크게 번성했고, 직장인 거리에는 로스구이 또는 생등심 메뉴가 성행했다. 일본에서 유래된 용어인 로스구이는 점차 묘한 조어인 생(生)등심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갔다. 소고기 냉장유통의 확산이 가져온 새로운 풍경이었다. 소기름 한쪽을 올려 달군 팬에 생등심을 구워 소주를 곁들였다. 생등심은 변하는 세상의 상징 같았다. 소고기 등심을, 그것도 냉장육을 구워서 먹는다는 건 이전 세대에는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몰락도 가까웠다. IMF가 터졌고, 생등심구이집은 속속 문을 닫았다. 구제금융시대는 저가형 돼지고기와 치킨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후 IMF는 빠르게 잊혀갔고, 강남은 벤처가 이끈 거품 경기로 과열됐다. 생등심집이 다시 돈을 쓸어 담았고, 스테이크라는 새로운 메뉴가 입맛을 사로잡았다. 당시 양식당들은 소 안심 스테이크를 다룰 줄 아는 요리사들을 구하느라 바빴다. 서울의 멋쟁이들은 와인에 스테이크를 썰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시위는 불신받는 정부와 민중의 저항이 소고기로 발화된 희귀한 사례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소고기였으니까 그만큼 더 거센 시위와 저항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한우는 고급화와 대중화의 길을 걸으면서 마블링을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과 일본의 등급제에서 힌트를 얻었다. 지방이 촘촘히 박힌 아름다운 고기의 단면과 부드러운 맛이 인기를 끌었다. 원플이니, 투플이니 하는 등급제를 사람들이 알아먹기 시작했다. 이 마블링을 두고 늘 말이 있었다. 소에 지방이 낀 것이 정상이냐, 곡물 사료와 소의 비육법이 ‘인도적’이냐 하는 문제들이 제기됐다. 그러나 소를 기르고 그걸로 먹고사는 이들의 다수는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더구나 마블링 많은 고기가 고급육이 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도 좀 봐야 한다. 마블링의 원흉(?)인 수입 사료 안 쓰면 꼴 베어다가 쇠죽 쑤어 먹여야 하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소고기 한 점도 만만하지 않은 세상이다. 이젠 이런 문제도 들여다보면서 심각하게 숯을 피워야 하는 일인가 싶다. 과거 어떤 조상들이 금우령이라는 법률에도 목숨 걸고 몰래 소고기를 구웠던 것처럼. 소고기는 미각 밖에서 보면 이처럼 복잡한 일이기도 하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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