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개폐기 점검 ‘이상무’… 고성 산불, 한전 관리부실 논란

입력
2019.04.09 18:11
수정
2019.04.09 21:3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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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개폐기 리드선 끊어져 불꽃… 국회 행안위 회의 “장애인 대피 배려 미진”

4일 발생한 고성 속초 산불 화재의 원인으로 한국전력이 지목한 개폐기의 모습. 이한호 기자
4일 발생한 고성 속초 산불 화재의 원인으로 한국전력이 지목한 개폐기의 모습. 이한호 기자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배와 맞먹는 산림 530㏊와 주택 500여채를 쑥대밭으로 만든 고성ㆍ속초 산불을 일으킨 최초 발화점이 원암리 주유소 맞은 편 전봇대의 개폐기로 지목되면서 한국전력의 부실관리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경찰청은 현장 감식 결과, 해당 전봇대에 설치된 2만2,900볼트 고압선 3개와 개폐기를 연결하는 리드선 가운데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을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끊어진 전선이 강풍에 이리저리 휘날리면서 다른 전선을 건드렸거나 나뭇가지 등 이물질이 전선에 붙어 불꽃을 일으킨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어찌됐든 과부하 등 위급상황 시 전류를 차단해야 할 개폐기가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이 개폐기는 2006년 설치됐고, 지난달 27일 정기점검에서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해당 개폐기와 낙뢰나 과전류로부터 개폐기를 보호하는 피뢰기(避雷器) 등 전봇대 전체를 뽑아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선의 분리된 단면과 그을린 흔적 등을 분석, 개폐기 리드선이 떨어져 나간 이유가 단지 ‘소형태풍급’ 강풍과 이물질 등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인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빠진 것인지를 밝힐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전의 책임소재가 가려질 전망이다.

경찰은 관계자는 “국과수와 함께 개폐기는 물론 피뢰기 연결선 제거 과정까지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단계별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선 봄철이면 강원 동해안에 강하고 건조한 국지적 바람이 부는 만큼, 이를 감안한 전신주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전이 지역특성을 감안한 강풍설비 등 적절한 예방조치가 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강풍에 이물질이 날아와 전선에 닿으면서 불꽃이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국과수 조사 결과가 나와야 밝힐 수 있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경찰은 또 산림 280㏊를 잿더미로 만든 강릉 옥계 남양리와 인제 남면 남전리 산불은 실화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이다.

강릉 옥계는 신당에서 전기 시설이 발견됨에 따라 이를 수거해 국과수에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인제 산불은 남전 약수터 인근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방범용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불이 난 시간대에 약수터를 출입한 차량을 특정해 탐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강원도 산불 원인에 한전의 과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결론 날 경우 적극적으로 배상 책임을 묻겠다고 9일 밝혔다.

진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한전의 개폐기, 송전선 등 관리 소홀 의혹에 대해 “한전에 어떤 과실이 인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화재가) 불가항력이 아니고 (한전의) 책임이 있다고 나오면 정부는 가만히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산불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장애인 등 재난 취약계층을 위한 대피시설과 수화방송 등 매뉴얼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이에 대해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장애인은 물론 노약자,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미진했다”며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답변했다.

고성ㆍ속초=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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